담임목사 컬럼


함께 걷는 사순절 편지(13)

[자유롭게 되려면]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8: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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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지내면 이제 3월도 두 번째 주를 보내게 됩니다. 마치 정지해서 가지 않는 듯 한 시간이었지만 하여튼 흘러가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두 가지의 시간 개념이 있습니다. 제가 날짜를 센 것처럼 흘러가는 양적인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 라고 하며 반대로 영원한 질적인 시간을 ‘카이로스’(kairos) 라고 합니다. 즉 카이로스는 신이 개입하는 질적인 시간, 한 번 밖에 일어나지 않지만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시간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한 면으론 크로노스의 물결 안에서 흘러가지만 신앙인들은 그 흐름 안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는 하나님의 시간 안에 있는 존재들이고 우리가 말하는 ‘은총’ ‘은혜’ 라는 것은 바로 카이로스 안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보거나 또 만지는 순간을 의미한다 할 수 있습니다.

플라톤은 <국가>라는 책에서 하찮은(일상적인) 순간이 영원한 순간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극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입구가 열려 있는 동굴 속 깊숙한 곳에는 어려서부터 다리와 목이 고정된 채 동굴 벽을 향해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생명나무 성도님들도 한 번 그런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 보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고정된 사람들 뒤에는 다른 어떠한 이들이 꼭두각시 인형을 들고 고정되어 묶인 사람들이 응시하고 있는 벽을 향해 그림자를 비추고 있습니다. 족쇄에 묶여 일생 한곳만 보아온 이들은 그렇게 벽에 어른어른 거리는 그림자를 무엇이라 여길까요? 묶인 사람들은 그것을 실재하는 사물(존재들)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즉 진실이 아닌 그림자와 같은 허상을 실재와 진실로 믿는 것이지요.

그러나 어느 날 그렇게 묶여 있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 ‘진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 그림자에 의문을 품기 시작합니다. “무언가 이상하다...” 그때부터 이 묶인 사람은 그림자의 속박에서 벗어나야겠다는 결심에 이제껏 자신이 매달려온 안전장치이자 또한 자신을 속박했던 억압의 족쇄를 부숴버립니다. 그런 다음 바로 그 ‘한 순간’에 일어나 일생동안 바라보았던 동굴 벽에서 눈을 돌려 빛이 들어오는 동굴입구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천천히 그 입구 쪽으로 걸어갑니다. 그러나 동굴 입구에 갈수록 고통스럽습니다. 일생동안 동굴 안의 벽만을 바라보았던 사람들이 빛을 바라보는 것이 고통스럽지요. 그러나 그것을 이겨내고 완전히 밖으로 나가 그 빛의 근원을 바라보고 깨닫게 됩니다. “빛이다”

이렇게 플라톤은 과거와 단절해 새로운 시작을 여는 동력을 고대 그리스어로 ‘엑사이프네스’(exaiphnes) 라고 했습니다. 엑사이프네스는 흔히 ‘갑자기/한순간에’ 로 번역이 됩니다. 즉 결정적인 순간이지요. 시간의 개념으론 카이로스 안에 있지만 어떤 한 순간에 ‘카이로스’ 즉 하나님의 개입, 하나님의 움직임, 하나님의 손 내밀어 주심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는 없다가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빛이 항상 동굴입구 밖에서 비추고 있듯이 진리는 항상 있습니다. 하나님은 부재하시다가 갑자기 내 곁에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그곳에 계셨고 항상 우릴 비추고 계시지요.

일상의 삶은 항상 우릴 고정시키고 때론 족쇄를 채워서 한 방향만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리고 갖은 그림자들을 진실과 실재로 여기며 살도록 단단히 조여 오기도 합니다. 크로노스의 시간 안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제 은총의 순간 갑자기 우리들의 마음에 눈을 돌려 전혀 다른 방향과 풍경을 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눈을 돌리고 몸을 돌릴 때 우리는 빛의 근원으로 계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카이로스의 시간 안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지요.

동굴 벽을 바라보는 즉 그림자를 바라보고 살 때는 우리는 묶인 자들이지만, 진리를 바라볼 때 우린 족쇄를 끊고 <자유> 하여 동굴입구 쪽으로 비로소 걸어 갈 수 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진리는 그렇게 우릴 자유하게 합니다.

 

 

이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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