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컬럼


함께 걷는 사순절 편지(14)

[주님, 여기가 우물가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4:14)

 

어제 사순절 세 번째 주일을 보내면서 성도님들과 이런 주일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 설교 본문의 말미를 편지로 대신하려 합니다. 월요일, 우리가 머무는 그 자리가 주님의 축복을 노래하게 되는 우물가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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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자비와 은총은 한 방향이 아니라 전 방위적입니다. 어떤 아카데믹한 자리, 거대한 성전과 같은 곳에서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의 자리가 바로 주님의 자비가 선포되는 자리입니다. 오늘의 성경에서 보게 되는 사마리아 여인이 주님을 만난 자리가 바로 우물가이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이렇게 예배드리는 자리, 온라인으로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 그 자리, 그리고 마스크를 쓰고 예배하는 이 지하의 예배당, 그곳이 바로 사마리아 여인이 주님을 만난 우물가이고 그 일상의 자리가 바로 은총의 자리입니다. 그렇게 아주 일상적인 아무런 특별할 것 없는 그 자리에 오셔서 우리에게 물을 달라 하시며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라고 말씀하시는 그 자비로우신 주의 음성을 모든 주님의 백성들이 다 듣게 되는 아름답고 귀한 은총이 가득하시길 소망합니다.

그러한 주님의 자비의 음성을 들으셔서 우물가의 한 여인이 그 마음의 억눌림, 영혼의 결박을 풀고 끊어 냈듯이 오늘 또한 우리들의 마음의 결박들이 그리고 어찌하지 못하도록 우릴 짓누르는 ‘물동이’ 들이 버려지는 역사들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람 안에 가지고 있는 그 마음의 병 그리고 그 마음의 상태는 결국 그 사람이 생활존재 방식을 결정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앞서 말했듯이 바이러스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피폐하게 하거나, 억압하는 심리적 질병에 감염되지 않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내가 일상으로 마시는 물로는 이 갈증과 심리적 질병을 해결할 수 없음을 여인과 인정하며 주님이 주시는 생수 앞으로 그 자비의 초청에 마땅히 두 손 들고 응답해야 합니다.

사마리아의 여인이 그 물을 마시길 작정하자 비로소 그 여인을 꽁꽁 묶고 짓누르던 요소들이 ‘버려지고’ 그 여인을 규정했던 물동이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고 비로소 동네로 내려가 말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남편이 다섯이 되도록 아마 한 마디도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말하지 못했던 그 입술이 열려 “와서 보라” 하며 만왕의 왕이신 주님을 말할 수 있는 사람, 단절된 사회 안으로 자신 있게 들어갈 수 있는 당당한 여인 본래의 목적을 회복한 인생을 살 수 있게 하였습니다.

한 여인의 인생이 바로 서게 되자 성경은 그 인생이 맺은 열매를 이렇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아멘.

생수의 힘입니다. 주님이 베푸신 자비의 힘입니다. 이제 그 비탄에 빠졌던 여인이 주님을 통해 자비를 경험하고 그 자비를 품어 동네로 내려가 사랑과 연대의 언어를 가졌듯 그래서 또 비탄에 빠진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해 내었듯이 이 감염병의 펜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교우 여러분!

이 감염병의 펜데믹을 이러한 사랑과 연대의 펜데믹으로 이겨낼 수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가 살아가는 그 아주 평범한 우물가 즉 삶의 자리가 주님의 축복이 가득한 자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특별히 구별된 장소가 아니라 살아가는 이 자리가 이러한 주님이 축복이 가득한 자리가 되기 위해 <내게로 와서 마셔라> 하시는 주님의 초청에 정중하고 갈급한 마음으로 함께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