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컬럼


함께 걷는 사순절 편지(25)

[잠잠하라 고요하라]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4:37-40)

 

그동안 인류는 흑사병, 청사병(콜레라, 현재 7번째 세계적 대유행), 백사병(결핵), 매독(다시 증가 중), 천연두(백신으로 박멸됨)와 에이즈, 에볼라, 사스, 메르스 등을 극복했고 지금은 코로나19를 마주 하고 있습니다. 처음 맞이하는 것 같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가 처음 맞는 것이지 역사 안에서 인류는 이런 풍경과 마주하여 이겨냈고 또 지나왔습니다. 물론 지나간 세대의 희생은 컸습니다. 그리고 고통도 지금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겠지요. 그러나 그러한 병마와의 싸움을 통해 인류는 더욱더 단단해 졌고 하나님의 창조와 그 능력에 대한 경외함 등을 키워왔습니다. 역시 지나온 세대를 돌보셨던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가 이 바이러스 사태에도 동일하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고난의 과정을 지나가며 우리 인간의 본성들이 더 긍정적인 발전과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인가? 아니면 더 악마적 속성들이 강화될 것인가에 관한 부분입니다.

고난을 마주하는 입장은 늘 두 가지였습니다. 한 가지 입장은 원망과 두려움 불평과 증오 그리고 반대로 희망 긍정 따스함 연대 소망의 입장입니다. 아쉽게도 인류는 극한의 전염병에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전자의 입장을 취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살아남았고 또 더 긍정적인 인간성의 발전을 이룬 것은 바로 후자의 태도 고난 안에서 사랑과 긍정 그리고 소망과 희망의 빛을 추구하며 잃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제 종교 리터러시(religious literacy)에 관한 짧은 글을 나누었습니다. 종교에 대한 이러한 읽고 쓰고 독해하고 해석하는 능력들을 더 강화해야 하고 키워나가야 거짓과 이단의 속임수를 잘 분별해 낼 수 있다는 요지였습니다. 그러나 이 리터러시(literacy)는 단순히 한 분야에만 사용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 쓰여 질 수 있습니다.

요즘과 같이 디지털 문화와 손바닥 안에 사회문명이 가지고 있는 모든 매체와 뉴스를 접할 수 있는 시대에 <디지털 리터러시>도 역시 요청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를 강타한 디지털 성범죄도 소위 <n번방> 사건이라 불리는 파렴치한 범죄들도 사실 이러한 디지털 문화에 대한 쓰기, 읽기, 그리고 독해의 능력들이 부족함이 한 원인이 되지 않았겠나 생각합니다. 그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 중에는 아마 사회의 여려 계층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문화와 문명에 대한 <쓰기 읽기 독해 해석>의 능력은 그 사회적 위치와 배움과는 무관합니다. 그러니 유아적 교리를 가지고 있는 ‘이단’에도 고위공무원 학자 교사들이 포진하는 것이기도 하고 이러한 ‘성범죄’에도 동일한 계층들이 포진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고난의 감염병 사태 가운데 우리가 퇴보한 존재들로 남지 않기 위해선 바로 이러한 능력들을 잘 키워야 합니다. 특별히 한국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가짜 뉴스> <근거 없는 미디어 소식>들을 잘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개 이 <가짜 뉴스>등은 악마적 속성들을 가지고 있어서 공동체를 분열시키거나 때론 공포심을 극대화 한다거나 사람들의 마음 안에 증오감정을 일으키는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전의 감염병 시대엔 이러한 <디지털 문화>가 존재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인류사회는 비슷한 질병과 함께 이전 세대는 경험하지 못한 <디지털 문화>라는 도구를 손에 쥔 첫 세대가 지금의 우리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퇴보한 문명을 갈 것인가? 진보한 문명으로 나갈 것인가는 이 디지털 문명을 잘 읽고 쓰고 해석하고 독해하는 리터러시(literacy)가 꼭 필요 합니다.

시방 우리는 광풍이 휘몰아치는 바다 가운데 떠밀려 있는 형국입니다. 그러나 그 배안에 우리 주님이 함께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읽고 쓰고 해석하고 이해하는 능력이 키워져 <믿음이 없어 무서워만 하는> 존재들이 아니라 주무시는 주님이 이 광풍의 바다를 향해 잠잠하라! 고요하라!” 명령하사 그 일을 이루실 분임을 이해하고 아는 능력들이 있어 공포와 분열 그리고 낙담의 자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잔잔해진 소망의 바다를 항해하게 될 것임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가짜 뉴스가 아니라 참으로 진리인 이 ‘기쁜 소식’ ‘참된 진리의 소식’을 널리 전할 수 있는 책무들이 또한 감당하며 이 시절을 보낸다면 고난이 또한 유익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