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컬럼


함께 걷는 사순절 편지(29)

[당신을 향하도록 지으셨기에]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역대하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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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프리카 출신의 5세기 철학자이자 신학자, 주교이기도 한 ‘성 아우구스티누스’ 는 기도 형식으로 쓴 자신의 영적 자서전인 <고백록>의 첫 단락에서, 인간 정체성의 핵심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께서는 우리를 당신을 향하도록 지으셨기에, 우리의 마음은 당신 안에서 안식 할 때까지 쉴 수 없습니다.”

영어 발음으로는 ‘성 어거스틴’ 이라고 부르는 이 놀라운 영적인 신학자의 이 한 줄을 이 고난 주간 첫 번째 월요일에 함께 마음에 깊이 품기를 소망합니다.

‘당신을 향하도록 지으셨기에...’ 어거스틴은 이 말에서 우리 인간의 어떤 근원적인 지향을 말하고 있습니다. 별의 별 방식을 동원하고 별의 별 지혜와 능력을 동원해서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의 어떤 지향들을 개발하고 창조해 내려고 하지만 ‘귀소본능(歸巢本能)’ 이라고 할까요? 인간은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어떤 방향으로 자꾸 끌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본원적으로 끌리는 방향을 지향하며간다면 마치 목적지와 동일한 방향으로 바람이 부는 대로 돛을 펼친 배와 같이 삶이 순항을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바람을 거슬러 억지로 겨우겨우 항해하는 배와 같을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의 이 짧은 고백문은 인간의 삶을 전체적으로 바라볼 때 “내가 어떤 목적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지어졌을까)?” 하는 물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살든지, 직업이 무엇이든지 지금 어떤 경제적 형편에 처해 있든지 가장 첫 번째의 물음은 “왜 내 인생이 시작되었는가?” 하는 물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많은 보편의 사람은 삶의 중간에 어떤 걸림돌이나 바위 등 자신의 인생을 가로막는 것들의 정체에 대해서 알려고 합니다. 그러나 중간의 걸림돌만을 문제시 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운 이생은 ‘내가 걷는 이 길’ 이 어떤 길인가를 보는 사람이겠지요. 내가 본디 가야할 길 위에 서 있는가? 아니면 어떤 이유에서든지 잘 못된 길에 들어섰는가? 를 말입니다.

아무리 빠른 기차를 타도 내가 가려는 곳이 부산인데 목포행 기차를 탔다면 기차에서 내려야 합니다. 이 기차는 편하고 좋은 기차고 제일 빠른 기차니 나는 계속 탈거야...” 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기차에서 내려 본디 가야할 목적지를 향한 기차로 갈아타는 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봄 꽃 만발한 고난 주간의 월요일을 사시는 생명나무 신앙공동체 형제.자매 여러분! 이 고난 주간이 이렇게 내 삶의 본래적 목적지와 지향점을 다시 몸과 마음을 알아가고 느껴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꽃의 지향은 화려하게 핀 그 지점에 있지 않고 비록 꽃잎에 떨어지고 땅에 떨어져 휘날린다 하더라도 열매 맺는 것이 그 지향이 있듯이 우리 인생이 지향점, 어거스틴의 고백처럼 <우리를 당신을 향하도록 지으셨기에...> 라는 고백이 우리 입술에 머물게 되는 한 주간이 되면 참 좋겠습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납시다.!

 

봄꽃 향기 날리는 월요일

이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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