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컬럼


함께 걷는 봄 길 편지(2)

[여관 밥상 같은 만남]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둘이 물에서 올라올 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행8:35-39)

 

작고하신 황현산 선생의 글에 이런 내용의 글이 기억이 납니다. 호남지방의 밥상에 관한 얘기였는데 호남지방에 내려가 웬만한 식당에 들어가 주문을 하면 스무 가지 서른 가지 반찬이 그득하게 차려진 밥상을 받을 수 있다하지요. 저도 종종 그런 기억이 납니다. “어떻게 이 백반 가격에 이렇게 반찬이 많이 나올 수 있지?”

그러나 호남사람들이 비록 부잣집에서라고 하더라도, 일상적으로 그런 밥상을 차려 놓고 먹는 것은 아닐 겁니다. 글에 따르면 이런 밥상 차림은 일제 강점기에 목포나 군산등지 미두장에 투기꾼들이 모여들면서 생겨난 여관의 밥상에서 비롯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종종 호남지방에선 “이게 여관집 밥상인가?” 하는 불평 섞인 말이 있다고 합니다. 의미는 차린 것은 많은데 먹을 것이 없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여관집 밥상’과 같은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손 안의 핸드폰에서 수많은 정보와 소식들이 홍수처럼 밀려오는데 마치 황선생님의 글대로 꼭 ‘여관집 밥상’같이 실제로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정보와 소식을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요즘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사회적 만남이 드문 해졌습니다만 또한 이러할 때 나 자신의 사회적 만남과 관계의 ‘질’들을 가늠해 보는 기회로 삼는 것도 좋은 시간이 될 듯합니다. 사회 분위기로 인해 만남을 가지진 못했지만 그렇게 불편하지 않는, 관계가 중단이 되어도 크게 자신의 삶에 영향이 없는 만남들을 내가 많이 붙들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를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여관집 밥상’ 같은 만남들이 아니었는지 말입니다.

에티오피아 내시(관리)는 딱 한 번 빌립을 만났는데 그 만남은 말하자면 정말 ‘밥과 국’ 과 같이 단출한 만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가짓수 많은 진수성찬보다 알찬 밥상을 마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빌립과의 단 한 번의 만남을 통해 ‘진리’를 알게 되었고 더불어 세례를 받아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정말 수지맞은 만남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꼭 있어야 하는 만남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타의에 의해서 사회적 거리를 두다 보니 “꼭”이란 말은 붙이지 않아도 되는 만남과 관계들이 의외로 많았다는 것을 확인한다면 그것도 이 어려운 시대를 지나가는 중에 얻은 유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관집 밥상’ 같은 만남이 아니라 생명을 얻는 ‘진짜 진수성찬’ 과 같은 만남을 이 봄에 꼭 이루시길 바랍니다.

 

이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