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컬럼


날줄과 씨줄로 엮는 여름편지(5)

[우리, 자유 합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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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대 교목실장 겸 기독교학과 교수인 김회권 목사의 책에 이런 비극적인 일화가 소개 되었습니다.

호주에 유명한 자동차 광이 한 명 살았는데, 최고급명차 람보르기니를 미치도록 사랑한 젊은이였다고 합니다. 람보르기니에 미쳐버린 이 사나이는 람보르기니를 사놓고 그걸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숭배해 마지않았다고 합니다. “람보르기니시여, 람보르기니시여” 하며 살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들이 람보르기니 앞에서 그것이 재산인지 신인지 분간도 못하고 못을 가지고 차에다 글을 썼습니다. 그 때 자신이 숭배하다시피 사랑하는 람보르기니에 못을 가지고 글을 쓰는 아들을 보는 순간, 그 아버지는 망치를 가지고 아이의 손을 내리쳤습니다. 한 번만 내리친 것이 아니라 여러 번 아이의 손을 내리 쳤습니다.

정신을 차린 후 보니 아이의 손이 온통 피 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병원 응급실에 데려가니 아들의 손을 절단해야 할 만큼 엄청난 상처를 입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병원에선 아이가 아버지에게 잘못했다고 빌기 까지 했답니다.

그 후 아버지가 집에 돌아가 람보르기니에 아들이 쓰다 만 문장을 보았습니다. “I love D” “아빠 사랑해!”였습니다. 이 아버지는 양심의 가책을 견뎌내지 못하고 결국 권총으로 자살했다고 합니다.

 

1900여 년 전, 빌라도가 주님께 진리가 무엇이냐고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요 18:38) 이 질문은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가 무엇이라고 할까요?

‘진리’라는 명사는 헬라어로는 ‘절대적 진실’이라 이해합니다. 그러므로 진리는 ‘이치’가 아니라 ‘참’이요, ‘어떤 실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헬라어로는 ‘이치’에 해당하는 어구가 없습니다.) 경험상 우리는 많은 진실 된 일에서 그 이치는 그 사실과 실제는 만질 수 있지 않습니까?

빌라도와 깊은 대화가 오가지는 않았지만, 주님은 이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진리요”(14:6) 앞에서 설명했듯이 ‘진리’가 곧 어떤 실제라는 뜻에서 내가 진리다 라는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면 바로 주님이 이루신 일들이 곧 실제요 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으로 말미암아 성취된 역사가 곧 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하십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8:32)

아무리 좋은 차이지만 람보르기니에 묶이지 않는 삶, 아무리 가지고 싶고 누리고 싶은 것이지만 명예에 묶이지 않는 삶. 참된 자유의 삶은 바로 주님의 인생 즉 그분이 이 땅에서 보여주신 역사를 진리로 알고 그 앎이 믿음이 되어 사는 삶이 참된 자유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를 눈멀게 하는 모든 것들을 거절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도 바로 이 진리를 알 때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 주님으로 말미암아 <자유> 합시다!

 

이 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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