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컬럼


"멈추어 성찰하는" (길 위에 쓴 편지 11)

[멈추어 성찰하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9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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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보내고 나니, 올 해도 끝이 보이는 듯싶습니다. 다음 달 교회력으로 추수감사절이 있고, 성탄의 절기인 대림 절기를 맞이하면 참 힘들었던 2020년도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날 것입니다.

생각보다 시간이 아주 빠르게 지나갑니다.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그런데 하루는 지구가 한 바퀴 도는 시간이고, 한 달은 달이 한 번 도는 시간이고 일 년은 지구가 태양을 도는 주기를 말하는데 독특하게 ‘일주일’은 지구와 관련된 천체 움직임과 상관이 없는 단위입니다. 그럼에도 일주일은 우리 인간의 삶속에 매우 깊숙이 아주 중요한 단위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일주일이 사람의 삶 속에 자리 잡게 된 이유는 당연히 성경의 제 7일간 이뤄졌던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에서 <안식일>이 그 배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안식일은 ‘사바스’sabbath라고 부릅니다. 고대 히브리어 단어에서 유래한 이 단어의 의미는 ‘멈춤’입니다. 여기서의 ‘멈춤’이란 내가 가지고 있는 힘과 기력이 모두 소진되어 어쩔 수 없이 스톱되는 모양이 아닙니다. 의식적인 멈춤을 말합니다. 지난 제 6일 동안의 자신의 삶과 생활들 그리고 모든 사회적 관계들을 자의에 의해서 ‘멈추어 살피는’ 성찰의 시간입니다. 그 성찰을 통해 결국 내가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음을 알게 되며 그 하루를 <절대자>의 뜻을 묵상하며 다가올 또 6일의 시간들을 준비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이 일주일이라는 그리고 그 안에서 하루의 멈춤(안식일)을 그렇게 중심에 두고 살아왔습니다.

2020년 들어서 때론 깨어있는 의식으로 이 <멈춤>의 시간을 가졌던 사람이든, 아니면 종교적 관성에 의해서 타의에 의해 이 <멈춤>의 시간을 가졌던 사람이든 매우 새로운 제 7일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아마 거의 기독교 역사 가운데 처음 겪는 일 일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혼란스러움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근본적으로 이 하루의 <멈춤>이 어떻게 인류 역사 가운데 자리 잡게 되었는지를 다시 마음 안에 잘 새겨야 합니다. 여러 가지 종교적 형식과 그리고 방식이 많이 변화되고 달라져 왔지만 그 근본은 인간의 삶 속엔 반드시 이 <멈춤(주일)> 이라는 시간이 있어야 그 다름의 6일을 준비할 수 있다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물론 지금도 사람은 제 7일의 <멈추어 성찰>하는 시간 없이 스스로 보름을 살 수 도 있고 한 달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할 수는 있어도 그 결과가 좋을 수는 없습니다.

예배의 형식이 변하고 또 이 <멈춤>의 시간을 맞이하는 것이 많이 달라졌다고 해도 우리 인류 안에 천체의 어떤 움직임과 변화와 상관이 없는 <일주일>이 왜 있게 되었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쉼 안에 우리가 왜 <멈추어야> 하는 지를 잊지 않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래서 가정 안에서, 또한 자연과 벗하면서 그 7일을 보내더라도 <멈추어 성찰>하는 시간을 통해, “내가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임을 발견하게 되고 다시 월요일을 시작하며 비틀대고 향방 없이 사는 인생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과 자의식을 가지고 사는 인생으로 사는 것이 참 행복한 삶이 아니겠습니까?

달이 꽉 차올랐던 보름이 지나고 달이 기울어져가는 시간이 되니 바람이 찹니다. 그 선선한 바람 속에서 “멈춤과 성찰”의 시간이 쌓이고 쌓여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아 원점으로 돌아왔을 때 “그렇게 한 해를 잘 살아왔구나...” 하며 감사의 찬양을 부를 수 있는 생명나무 믿음의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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