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컬럼


"야곱의 기도" (길 위에 쓴 편지 /마지막)

[야곱의 기도]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창 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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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안개 길이지만, 그 속에서 우릴 보시는 분 계시네... 10.28 새벽)

 

노예였다 철학자가 된 에픽테토스(A.D50-135년)는 자신의 파란만장하고 굴곡진 삶을 바라보며 지혜의 글들을 남겼습니다. 책의 이름은 ‘엔케이리디온’encheiridion 입니다. 뜻은 ‘늘 가지고 다녀야 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 책의 첫 구절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마음 먹기에 달려 조절할 것들이 있고, 우리가 아무리 마음을 먹어도 조절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은 만사에 대한 의견, 삶의 목적, 욕망, 혐오 같은 것으로 우리의 행위로 결정하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조절할 수 없는 것은 재산, 명성, 권력과 같은 것으로 우리의 행위로 결정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할 수 있는 것들과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음을 깨닫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깨달음이 아닐 수 있지만 그러나 인생을 살다보면 이 두 영역을 구별하며 그렇게 받아들이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조절할 수 없는 것들을 조절해 보고자 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 인간의 <근원적 죄>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같이’ 되어 보려는 시도를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깊은 샘을 가진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을 잘 분별하며 사람의 편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과정에 성실히 임하며 하나님의 편에서 이루시는 일을 순명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나에게 주어진 하늘의 소명을 이루며 사는 삶

 

“편지”의 이름으로 성도님들을 찾아갔습니다. 갑자기 당한 재난과 같은 상황에 마음과 생각의 소통까지 끊어질 수 없는 일. 편지는 우리가 보고 만나 소식을 듣고 나누는 통로였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을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2월 26일 시작된 <사순절 편지>의 이름으로 33통

4월 13일 시작된 <봄길 편지>의 이름으로 24통

7월 6일 시작된 <날줄과 씨줄로 엮는 편지>의 이름으로 16통

 

교회역사상 처음으로 만나게 된 <비대면 예배> 환경 안에서

9월 4일 시작된 <길 위에 쓴 편지>라는 이름으로 16통

이렇게 총 89통의 편지를 통해 생각과 마음과 그리고 하늘의 바람과 볕들의 소식을 나누었습니다. 편지를 보내며 오늘 나에게 주어진 하늘의 소명을 생각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성도님들도 그 조금의 행복을 나누셨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이제 잠시 편지를 접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 생각과 마음을 예배 안에서 함께 나누게 되는 <말씀 나눔> 안에 더 깊게 새기겠습니다.

 

오늘 새벽기도회에서,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 앞에서 야곱이 처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을 함께 읽었습니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야곱의 기도는 “이제사 내가 사람의 일을 이제 구별하게 되었사오니 오직 ‘하나님의 일’을 행하시옵소서” 하는 기도였습니다. 지혜는 먼 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늘 나와 걷고 계시는 분이 있음을 알고 그분께 “이제 계획하신 당신의 일을 하시옵소서” 하고 그 자리를 내어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짧고 부족한 저의 작은 편지 글이 이렇게 야곱의 기도와 같은 자리에 성도님들이 서시도록 그 옆을 지켰던 부지깽이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으로 10월의 끝자락에서 <편지 글>을 갈무리 하겠습니다.

 

주님 평화!

 

_이 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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