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나눔


[사순절 묵상] 2024년 3월 11일 월요일

사순 19. 3월 11일 월요일

<매듭짓기>

오늘의 말씀_시편 107:1-16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시편 107:8

 

    연세 많은 분이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늘 '내 인생을 풀어 소설로 쓰면 트럭 한 대 분량은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삶이란 끊이지 않고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임에 틀림없으며, 사람마다 다 자기만의 이야기-서사(敍事)가 있습니다. 비록 전쟁이나 기근처럼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시기는 아니더라도 혼자 져야 할 삶의 무게가 있고, 어떤 형태로든 그 시간의 다리를 건너 오늘에 이르렀을 터이니 말입니다. 경중(輕重)을 비교하며 판단할 일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삶의 여정과 서사를 돌아보며 때때마다 어떻게 매듭을 지었는가 살피는 것입니다. 삶에는 대나무의 마디처럼 매듭이 있고, 매듭에는 분명한 흔적과 기억이 있기 때문이지요.

    시편 107편은 시인이 자신의 생과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아보며 그 안에 새겨진 흔적을 고백하는 노래입니다. 머물 곳을 찾지 못해 유랑하는 인생으로 광야를 지나기도 했고(4-9), 허물로 자유를 잃고, 죄에 갇힌 인생이기도 했고(10-16), 육신의 질고로 죽음의 문턱에 이르기도(17-22), 생계를 위해 먼바다까지 나갔으나 풍랑으로 인해 희망이 지기도(23-32) 했습니다. 때로는 자기 잘못으로 고통에 몰렸고, 영문도 모른 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기도 했습니다. 인생을 축약해 놓은 듯합니다.

    자신의 삶이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던 적도 있습니다. 한 물결이 잠잠하기도 전에 또 다른 물결이 일어나 정수리까지 덮쳐오는 거지요(시 42:7). 그러나 믿는 이에게 삶은 한없는 넋두리가 아닙니다. 끊이지 않고 덮쳐오는 삶 의 무게들로 인해 근심과 고통으로 마지막까지 내몰렸지만 바로 그 순간 주님께서 삶에 개입하셨다는 것입니다. 내 삶에 개입하신 주님의 인자하심과 베푸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는 거지요. 삶의 굴곡마다 하나님께서 맺어준 '은총의 매듭‘이 선연한데 어찌 넋두리로 치부하겠습니까?

    인생은 이 시편처럼, 여러 단막극으로 이어진 장편 드라마입니다. 세상 풍파에 휩쓸리다 하나님 은총의 항구에 정박합니다. 어둠을 헤매다 하나님 은혜의 빛으로 돌아와 매듭을 짓습니다. 헨리 나우웬은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향>을 묵상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시작에서 끝까지, 우리는 그분 품에 있는 것이며 다만 '들락날락거릴 뿐'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끊임없이 들락거리는 아들딸로서 생명을 주시는 분께 사랑을 받고 있지요.
자신이 걷고 있는 여정을 면밀히 관찰할수록 매일, 아니 매시간 떠나고 돌아오길 되풀이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됩니다.
생각은 시시때때로 곁길로 새어 나가지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마음은 애정을 찾아 떠났다가 상처투성이가 되어 돌아옵니다. 몸은 욕망을 좇아 뛰쳐나가지만 머지않아 길을 되짚어 돌아옵니다.
떠나고 돌아오는 건 삶의 단막극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연속극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믿음은 삶의 마디마다 새겨진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하는 예술이기도 합니다. 폭풍우에서 안전한 항구로, 광야에서 집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마디마다 매듭지은 그 솜씨를 기억하며 찬양하는 예술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으킨 그 역전(逆轉)과 역설을 기억하며 찬양하면 할수록 생생한 삶으로 채워질 수 있지요. 우리도 이 믿음의 여정에서 이미 여러 편의 단막극을 매듭지었습니다. 매듭에 새겨진 흔적을 어루만지며 그 분이 개입하신 손길을 기억하십시오.

 

<기도>

제 삶의 마디마다 주님이 개입해서 역전시켰던 흔적을 발견하고 감사하며 찬양하길 원합니다. 이 삶이 아버지 하나님을 향한 신뢰로 들락날락하는 가운데 은혜만이 점점 더 생생해질 수 있도록 저를 일깨워 주십시오. 제가 주님 품 안에서 출발하였다는 것, 끝내 당신께로 돌아가는 여정임을 잊지 않게 하십시오. 아멘.

 

『사순절묵상집_곁에 머물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