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나눔
[사순절 묵상] 2024년 3월 21일 목요일
사순 27. 3월 21일 목요일
<낮아져 하나님 뵙기>
오늘의 말씀_빌립보서 2:1-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립보서 2:5
본문은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어떤 열매를 맺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의 믿음과 순종으로 죄 때문에 죽을 인생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이 열렸는데 빌립보 교우들의 믿음은 이웃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는 물음입니다.
물음은 다양합니다.
- 주저앉고 포기하고 싶은 자리에서 주님의 격려와 권면으로 다시 일어서는지요?
- 사랑하려다 미워하고, 베풀다가 손해다 싶어 속상하던 마음이 주님의 말씀으로 위로가 되어 '조금 더 손해 보자' 다짐하는지요?
- 선뜻 다가가기 어려우나 성령의 감동으로 감당하며 사귐이 더 깊어지는지요?
- 믿음 가운데 다른 이의 덕이 보여 그를 높이고, 내 어리석음도 보여 허물을 인정하는지요?
-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다른 지체가 소중해져서, 그의 일을 내 일처럼 함께하는지요?
이러한 믿음은 자기를 넘어섬으로 맺을 수 있는 선한 열매입니다. 옛사람들은 이를 극기(克己), 자기를 이기는 것이라 했습니다. 자기를 지키기는 가을 서릿발처럼 하고, 다른 이를 대하기는 봄바람처럼 하라고 했지요. 자기를 이기기 위해선 엄격해야 한다는 겁니다. 자기를 이기는 길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왜 내게만 엄하고, 거듭 허물 짓는 이에게는 관대하냐는 억울함을 다독이기 쉽지 않습니다.
사도는 자기를 이기는 믿음의 길을 안내합니다. ‘자기를 이기는 길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이뤄질 수 있으니, 예수의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 마음은 자기를 비워서 낮아지는 마음입니다! 그분은 하나님과 같은 분이지만 이를 내려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셨고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셨습니다. 죽기까지 순종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샤를 드 푸코는 ‘그분이 얼마나 낮아지셨는지 예수님 이후로 아무도 그분보다 더 낮은 자리에 처할 수 없을 만큼 낮아지셨다.’말했습니다. '비우고 낮아지는 마음'은 아주 구체적입니다. 자신에게 충분한 권리와 힘이 있음에도 스스로 안 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누릴 수 있는 자격과 권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비우고 낮아져 비난과 멸시를 받아도, 인간의 어리석음 때문에 조리돌림을 당하고 죽기까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비우고 낮아져 바닥으로 내려간 것은 그보다 더 힘겹고 고통스러워 자신을 포기하는 사람이 없도록 돕고자 하신 거지요. 예수님의 비우고 낮아짐을 아는 이라면 누구도 자기 처지를 핑계 삼아 변명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이를 살리기 위해 어렵고 낮은 조건에 처한 그 자 체로 주님은 우리의 위로이며 소망이 된 거지요. 그리고 끝내 우리에게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생각한다면...’이라고 고백하게 합니다.
놀라운 것은 예수께서 낮아진 그 자리에 하나님이 계셔서 그분을 높였습니다. 예수께서 내려간 가장 낮은 자리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곳이 하나님께서 기다리는 자리이며 하나님 뵙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낮은 곳의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양시켰습니다.
오늘에는 빌 2:6~8절을 '케노시스-자기겸허'라는 신학적 명제로 정리하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에겐 예수를 따르는 중에 겪은 구체적인 체험으로 우러난 찬양입니다. 예수를 따라 비우고 낮아졌더니 거기서 하나님을 만났다는 영적 고양을 노래한 거지요. 이것이 초대교회의 믿음의 길이며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기도>
주님, 당신이 계신 낮은 곳으로 저도 갈 수 있게 하십시오. 저의 능력으로는 불가하지만, 주님이 저를 차지하시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낮아지는 척하며 은근히 높여주길 바라는 이 고약한 마음을 당신 앞에 드리니 녹여주십시오. 그리되기까지 더 자주 주님을 우러르며 한없이 내려가는 당신을 묵상하길 원합니다. 저를 도우소서. 아멘.
『사순절묵상집_곁에 머물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