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나눔


함께 걷는 사순절 편지 (10)

[반성]

 

그런즉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얼굴을 돌려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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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힘으로 불가항력적인 일들을 만나면 그 마음마저 연약해져 평상시엔 귀에 잘 안담아 두었던 말도 의지가 되곤 합니다. 빗방울 흩날리는 오늘 “온도가 올라가고 습도가 높아지면 바이러스의 활동이 주춤할 수 있다”는 말도 위안을 삼고 싶은 아침입니다.
일제의 지배가 끝날 무렵 한국문단에 등단한 시인이 있습니다. 김수영 시인. 그는 한국 시 문학에 큰 발자국을 남긴 사람이기도 한데 그가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이런 시를 발표했습니다.
 
 
절망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김수영, ‘김수영 전집1-시’, 민음사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과 같이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절망’이라는 것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고 시인은 <절망>이라는 어둠의 뒷면을 조망하고 있었습니다.

가끔 이 시대가 ‘절망’스러울 때가 있는 것은 어떤 것도 반성이 없어 보이고 그 마음을 돌이키는 것이 없어 보일 때입니다. 그것은 타인을 향한 시선만이 아니라 나 자신 스스로를 바라 볼 때도 동일하게 드는 마음입니다. 고집스러운 자신을 볼 때 절망이 옆에 어른거리고 있었으며 반성하지 않는 자신을 조금 떨어진 발치에서 볼 때 절망이 그 뒷 배경으로 보이곤 했습니다.

요즘 감염병이 지역 감염으로 군데군데에서 확진되는 그 배후엔 자신의 신분, 즉 신천지 집단의 일원이었음을 숨기는 일이 있곤 합니다. 공무원도 있고 병원종사자들도 있고 사회의 여러 각처의 직장이나 삶의 자리에서 단순하게 자신에게 돌아올 피해만을 계산하며 타인의 고통엔 무감각하는 즉 <반성>이 없는 ‘마음을 돌이키지 못하는’ 굳어지고 딱딱해진 마음이 이 감염병의 불씨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대구의 한 아파트에서 신천지의 일원들이 집단으로 감염된 배경이 ‘31번’ 확진자와 예배를 드렸다는 뉴스보도는 <반성>이라는 것을 모르는 마음들이 얼마나 폭력적인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참으로 ‘절망’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고’ ‘졸렬과 수치가 그 자신을 반성’하게 되는 일을 꿈꿔봅니다. 하늘의 계시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려왔을 때 깊은 어둠과 절망의 마음들이 온 민족을 덮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상에게로 향한 마음을 내게로 돌이키라” <돌이키라> 라는 말 안에서 우린 김수영 시인이 말하고자 했던 <반성>을 더불어 생각해 봅니다.

온갖 자랑과 욕망으로 향했던 마음들이 이제 <반성>하고 다시 하나님께로 그 마음을 돌이키는 것으로 이 ‘절망’의 자리를 털어내야겠습니다. 그리고 털어냄은 그 반성의 거울을 내 자신에게 먼저 비춰보는 것으로 시작 되겠지요.

 

이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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