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나눔


함께 걷는 사순절 편지(15)

[영원한 것을 붙들려면]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1:1-2)

늦은 밤, 교회에 다시 나와 책상에 앉았습니다. 적막한 거리. 적막한 상가건물.. 불 꺼진 예배당의 모습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뒷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잘 이겨내야지요. 교회에서 만든 휴대용소독제를 들고 교회가 위치한 상가 몇 군데를 방문했습니다. 다들 이 상황을 어떻게 이겨 나갈지 막막해 하는 마음들을 잠깐이라도 위로하고 나누었습니다.

고대 히브리어로 ‘헛되다’라는 말은 ‘헤벨(hebel)’이라고 합니다. 고대 경전에 사용되는 많은 단어들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 헤벨이라는 말도 사람의 경험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시적으로 보이는 구체적인 의미가 있고 또한 한 면으로는 추상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헤벨의 가시적인 의미는 ‘수증기’ 혹은 ‘연기’입니다. 추운 겨울 지역 발전소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를 떠올려 보십시오. 굴뚝을 꽉 채워 수증기가 나오는 듯싶지만, 얼마를 가지 못해 그 수증기(연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요. 헤벨은 바로 그런 ‘수증기’ 또는 ‘연기’를 말하지만 솔로몬은 이것을 보면서 어떤 ‘덧없음’ 또는 ‘허무’ 함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지혜의 책을 기록하며 왜 이 ‘헤벨’ 이라는 장면을 생각했을까요? 세상에서 가지지 못한 것 없이 모든 부와 명예와 삶의 환경을 소유한 왕이 왜 허무함과 헛됨을 생각했을까요? 참된 지혜서를 쓰려다보니 오늘 내가 누리고 소유한 것들의 ‘수증기’ 같음을 보지 못한다면 그 연기에 가려 그 너머의 참된 진실을 볼 수 없었음을 솔로몬이 깨달은 것인가요?

유럽의 바이러스가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손세경 집사님의 큰아들이 현재 스페인에서 한국으로 귀국하려고 하는데 계속 예약된 비행기표가 캔슬되는 바람에 애를 태우고 있다는 소식이입니다. 기도해 주세요.

유럽의 그 한가로운 길거리의 야외 까페, 아름다운 공연장, 그리고 순례자들이 배낭을 메고 걸었던 순례길들이 모두 적막강산이 되었습니다. 적막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공포가 지배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순식간에 말입니다.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것들 이대로 영원토록 지속될 것만 같은 것들이 한 순간에 사라지고 수증기 같은 그림이 되었습니다. 자랑할 것이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전도서의 전도자는 바로 이런 수증기를 직시하고 느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겠지요. 영원하다고 믿는 것이 영원하지 않음을 직시할 때 비로소 영원한 것들을 만나고 붙들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이 감염병의 사태를 우리가 필연적으로 통과를 해야 한다면 병을 이기는 노력만이 아니라 전도서의 지혜자가 보았던 풍경을 우리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참으로 영원한 것을 붙들고 그 안에서 설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이헌 목사

 

P.S 손집사님 큰 아들이 한국 오는 비행기를 어젯밤 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