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나눔


함께 걷는 사순절 편지(18)

[우리가 날아가야 할 km]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19:25-26)

봄기운이 느껴집니다. 볼 수 있게 되어 봄인가요? 봄이 되면 겨우 내내 눈길 주지 않았던 집안의 화초에 눈이 가고 길가다 마주치는 벚나무 가지 끝의 꽃망울에 눈이 갑니다. 바싹 마른 가지 끝에 올라온 진달래 꽃 봉오리에 눈이 가고 이렇게 ‘봄’은 보게 되는 것으로부터 ‘봄’을 만나게 됩니다.

무릇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자신의 본래의 자리를 찾아 움직이고 이동을 합니다. 겨울이란 죽음의 자리에서 봄의 생명의 시작의 자리로 이동을 하고 움직이듯이 멈춰있는 것은 죽은 것이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이렇게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신의 본래의 자리를 찾아 움직이는 것이 때론 상상을 초월하는 무게감이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 1만종 이상의 새들 중 약 1800종이 장거리 비행을 감행한다고 합니다. 이들 대부분은 여름이면 북쪽으로 수백 킬로미터 거리를 이동하고, 겨울이면 다시 남쪽으로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합니다. 자신의 삶의 자리를 찾는 몸짓 치고는 그 대가가 혹독하게 보입니다.

새들 중 가장 유명한 종은 북극제비갈매기라 합니다. 북극제비갈매기는 북극에서 알을 낳은 뒤 남극으로 무려 19.000km를 왕복 비행한다고 하니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 비행은 목숨을 담보로 한 죽음의 이동이며 동시에 새로운 생명을 위한 탄생의 숭고한 몸짓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생명으로 지음 받은 우리들도 이러한 근원적인 생명의 자리를 위한 이동이 필요합니다. 한 마리의 작은 새가 그 먼 길을 날아가듯 어쩌면 사람이 이 근원적인 생명의 자리로 가기 위한 것이라면 그 치루어야 할 대가가 그렇게 가볍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볍지는 않지만 또한 무거워 감당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9-30)

우리는 이 말씀에서 믿음의 은총과 은사를 구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쉼 없이 이 멍에의 무게에 대한 의심을 하게 될 것인데 근원적 생명의 자리로 돌아가는 그 길이 편하고, 가볍다는 말씀을 신뢰하고 믿게 되는 은총 말입니다.

부자청년이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하는 질문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왔습니다. 주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다가 마지막 주님의 권면에 대해 그 부자청년은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돌아갔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 그는 자신이 주님이 메라고 하신 멍에를 맬 수 없을 거라고 스스로 짐작했고 그로인해 자괴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메라고 하신 멍에가 편하고 가볍다는 사실을 배워야 했습니다. 내가 하려면 그 멍에를 맬 수 없겠지만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힘으로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북극제비갈매기가 생의 근원을 찾아 날아야 하는 거리가 19.000km 라고 한다면 우리가 날아가 이동해야 하는 거리는 <내가 하려는 것에서 하나님이 하시도록> 하는 것을 온전히 배우는 거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단,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누구든지 그 거리를 날 수 있다는 겁니다.

 

이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