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나눔


함께 걷는 사순절 편지(23)

[악의 평범성]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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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네 번째 주를 지난 금요일 아침을 맞으시는 성도님들에게 우리 하나님의 위로와 평화가 가득하길 소망합니다. 사순절 함께 걷는 편지를 23번째 쓰게 되었습니다. 본래는 계획에 없던 일인데 사람의 계획함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를 절실하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교회 공식채널인 카카오 플러스를 통해 80여분에게 보내드리는데 편지를 확인 하시는 분들은 많을 때는 60여분 적을 때는 한 40여분 정도 편지글을 여시는 것 같습니다. 하여튼 비대면이 일상이 된 시절 이렇게 글로나마 안부를 묻고 메시지를 나눌 수 있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요즘 감염병도 큰일이지만 우리 한국사회를 강타한 사건이 있습니다. 이른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입니다. 제가 이 이름을 들은 것은 작년 10월 정도였습니다. 제가 구독하던 신문에서 몇 차례에 걸쳐서 심층 보도를 한 것을 관심 있게 보았습니다. 한편으론 이 범죄행위와 피해자들이 있는데 왜 주범을 잡아들이지 못할까? 하는 분노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 주범이 체포가 되어 얼굴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저는 ‘박사’라고 불리는 이 사건의 주범의 얼굴이 TV에 공개된 모습을 보고 또 그에 대한 여러 뉴스들을 접하면서 이전에 우리 성도님들과 함께 나누었던 부분이 생각이 났습니다.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에 대해서 입니다. 이 개념은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1963년 저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유대인 대량 학살인 <홀로코스트>를 설계했던 ‘아히히만’의 전범 재판을 지켜보면서 이러한 역사 속의 비극적인 사건과 악행은 광신자나 반사회성 인격 장애자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을 단순히 ‘공무원’ 이라 주장하며 나는 단순히 국가에 순응하며 지시한 바를 따랐을 뿐이라며 내가 했던 행동을 보통이라고 스스로 그렇게 믿고 여기며 사는 사람들에 의해서 저질러진 사건이라고 아렌트는 주장했습니다. 즉 악은 악의 개념에 어울리게 광신자, 반사회성 인격장애자, 정신병자들이 아니라 대단히 평범한 일상 속에 감춰져 있거나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지요.

주범은 거론할 가치가 없고 한국사회가 깜짝 놀란 것은 그 방에 참여한 사람이 26만 명 정도가 된다는 보도였습니다. 성착취물에 인격이 도착된 병자들만이 그 방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는 반증입니다. 이 사회에 우리가 쉽게 만나는 아주 보통의 사람들이 그 방에 돈을 들여 참여하며 그 범죄의 현장을 지켜보았다는 것이 우리 놀라게 했습니다.

우리는 <죄>가 어떻게 하나님의 창조 안에 들어왔는지를 항상 경각심을 가지고 알고 있어야 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뱀이 사람을 유혹할 때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를 통해 죄가 들어왔음을 항상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멋지고 좋고 큰 것이 세상에선 선택의 기준이 되겠지만 하나님의 뜻 안에선 작고 볼품없어도 그 안에 주님의 선하심이 심겨져 있는 것이 기준입니다. 우리는 왜 좁고 협착한 길을 선택해서 걷습니까? 지혜롭다 하는 사람들은 선택하지 않는 길, 그 길이 바로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라고 말했던 것이지요.

죄는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평범하고 때론 아름다운 모습으로 호시탐탐 우리 주변에 포진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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