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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묵상 자료(15)

「적의 내밀한 역사」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여라” 하고 이른 것을, 너희가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것이다.(마 5:43-45a)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원수사랑’의 이상은 아름답고 고상합니다. 하지만 이상이 너무 크고 높으면 현실과 더 큰 괴리가 생깁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는데 실제로 필요한 것은 ‘이상’이 아니라 ‘이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원수가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적의 내밀한 역사를 이해하면 적을 미워할 수 없게 된다.”고 했습니다. 원수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두려움과 무지 때문에 타인을 경계하며 의심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도 불운하고 불행한 삶의 조건과 환경에서 살다 보면 우리의 원수처럼 모질고 사나운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사실을 이해하면 여전히 원수를 사랑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최소한 무작정 원수를 미워할 수는 없게 됩니다.

미움을 버리는 순간 원수는 더 이상 원수가 아니게 됩니다. 적의 내밀한 역사, 원수의 살아온 이야기를 귀 기울여 경청하고 이해하는 것은 원수 사랑의 시작이며 기본입니다.

 

(2020 부활절맞이 묵상집/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