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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추락"(사순절 묵상 자료 7)

「이유 있는 추락」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심하겠느냐”(마 6:23)

 

  빛이 되어야 할 교회가 세상을 더 어둡게 합니다.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가 부패의 싹을 키워 세상을 더 어지럽힙니다. 평화의 일꾼이 되어야 할 교회가 세상에 갈등을 더합니다. 걱정을 덜어야 할 교회가 세상에 걱정거리를 더해줍니다. 우리 안에 빛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빛이 가장 필요한 곳은 이제 세상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가장 어두운 곳도 등잔 밑이 아닌 우리의 발밑입니다. 너무 밝은 것만 좇다가 그만 그 빛에 눈이 멀어버렸나 봅니다.

  나치 시대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교회도 그랬습니다. 용기 있는 독일 기독교인들이 정직한 성찰로 침묵을 깨뜨렸습니다. 1947년 독일 개신교회 형제모임이 발표한 고백문의 일부입니다. 2020년 한국교회를 향한 메시지로 읽어도 무방해 보입니다. “과거를 미화하는 환상과 또다시 전쟁이 올 것이라고 망상하는 짓을 버리고, 오히려 좀 더 나은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자유와 책임을 투입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의와 복지와 사회적 평화에 도움이 되고 이웃나라들과 화해하는데 봉사해야 합니다.”

  사람이 무너지는 것은 누군가 쓰러뜨리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람은 스스로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무너지는 순간 야수의 본능만 남습니다. 교회가 추락하는 것도 누군가가 쓰러뜨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위기는 밖이 아니라 안에서 옵니다. 길이 보이지 않는 것도, 교회가 길을 잃은 것도 세상이 더 어두워져서가 아니라 내 안에 빛이 빠르게 소멸해가기 때문입니다. 없는 적을 만들기보다 나를, 우리를 먼저 살펴야 하는 이유입니다.

 

(2020 부활절맞이 묵상집/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