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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묵상 자료(25)

「탈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마 5:46)

“그때 희랍정교회 주교가 나섰습니다. ‘지금 봐서는 남북통일이 쉽게 이루어질 것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38선이 문제겠습니까?’ 그리고는 미국교회 목사가 성찬집례자로 나서며 화해와 평화의 인사를 나누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가볍게 악수하는 정도로 시작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어요. 우리보다 북쪽 사람들이 더 울었던 것 같아요. 그 순간 마음이 하나가 된 겁니다.”

 

1986년 ‘글리온 회의’의 마지막 풍경입니다. 분단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교회 대표들이 제3지대인 스위스 글리온에서 대화의 자리를 가졌습니다.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시작된 자리는 어색함과 착잡함으로 끝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반전은 항상 마지막 순간을 기다립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문은 스스로 열어야 하는 문입니다. 어떤 무기로도 깰 수 없고 다른 누군가가 대신 열어줄 수도 없습니다. 그저 스스로 열고 나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는 감옥에 갇혀 내가 있는 곳이 내가 만든 감옥인 지도 모른 체 나 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고 보면 스스로가 가장 큰 감옥입니다. 화엄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얻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 제 집 문턱을 넘지 않고 더 큰 세상과 마주할 수 없듯이, 집단의식의 옹졸함과 편협함을 넘어서지 않고는 경계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평화의 나라에 합류할 수 없습니다. 함께 만들어가는 미래 사회와도 조우할 수 없겠지요. 나를 넘어서는 그 순간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시작입니다.

 

(2020 부활절맞이 묵상집/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