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컬럼


사순절 편지 <도토리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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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김포에 소재하고 있지만, 성도들님들 가운데 김포를 원 고향으로 하는 속칭 <토박이> 는 몇 가정이 되지 않습니다.
김포는 1970년에 인구수가 76.000명 정도이었고 1995년이 되어서도 약 10만 명 대였으니,
2025년 인구 70만을 목표로 하고 있는 현 김포시에서 김포를 원 고향으로 두신 분들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김포를 고향으로 가지신 권사님이 얼마 전 큰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수술 방에서 회복해서 나오는 권사님을 제가 맞이 했습니다. 침상에 누워 극심한 통증으로 간호사에게 "나 좀 안 아프게 해봐..." 했던 권사님이 며칠 후에 퇴원을 하셨는데, 아마 김 권사님이 이권사님의 입맛을 위해 묵을 쑤셨나 봅니다. 오전에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댁에 계시죠."
"네"
"묵을 쒔는데 기똥차게 맛있어서요...."

군사분계선 근처 김포 용강리에 권사님이 종종 취미생활로 다녀가시는 농장이 있는데, 퇴원 후 농장에 봄 준비를 하시느라, 그리고 김권사님은 바람을 쐬시러 나가는 길에 두 분이 집에 들리셔서 손바닥 만한 ‘묵’ 한 덩이를 내어 놓고 가셨습니다.

"목사님, 맛이나 한 번 보시라고요...."

얼마나 맛있기에.. 그 맛이 기똥찬가..

저는 묵을 찾아다니며 먹는 정도는 아니지만 권사님은 아마 묵 한 점을 드시다가 여리 여리한 담임목사가 생각이 났다봅니다.
“기똥차게” 맛있는 것을 한 점 나눠먹고 싶은 그 마음. 김포에서 나고 자라, 이제 노인이 되신 권사님의 ‘묵’ 한 덩이를 잠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상수리나무의 그 쓴 열매를 이런 묵 덩어리로 만드는 그 기술이 묵을 대할 때마다 늘, 항상 놀라웠지만, 그 ‘묵’ 한 덩이를 나눠 먹고 싶은 그 마음도 그에 못지않게 놀랍고 따듯했습니다.

사순절 기간. 나라가 혼란스럽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말이 무겁고 날카로워졌습니다. 침묵과 묵상으로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묵상해야 하는 때에 <잠잠한 골방>을 지키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 때, 제 앞에 놓여진 묵 한 덩어리를 보면서 이런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이런 소소하고 따듯한 목회의 풍경이 나의 글이 되고, 우리 교회의 이야기가 되고 그리고 한국교회의 풍경들이 되게 해 주세요..”

하덕규 목사가 '시인과 촌장' 이란 이름으로 가수활동을 할 당시 부른 「풍경」이라는 노래에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이 사순절 우리도 교회도 현재 한국사회도 그리고 우리 신앙의 길도 하나님께서 원래 있으시라고 했던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하셨던 그 제자리로 돌아가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회복하는 사순절이 되길 이 이 절기에 함께 기도하며 묵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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