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컬럼
사순절 편지-3 <영광과 죽음>

꽃기운이 가득합니다.
봄 되어 해 마다 열리는 비슷한 풍경이지만 그러나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은 달라져 있고 오늘의 삶의 자리는 생경하기도 하고 많이 변해 있습니다. 꽃길은 여전한데 그 아래 사람은 여전하지 못합니다.
플라톤은 ‘국가’(Politeia) 제4권에서 ‘자기 자신을 이긴다’라는 말을 합니다. 자기가 자기를 이긴다는 것은 자기가 자기에게 진다는 것과 같으니 자기가 자기를 이기면서 동시에 자기에게 지는 모순적인 표현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이 말을 깊이 들여다보면 모순적인 말이 아니라, 플라톤이 인간의 내면을 이해하는 구조와 성찰을 볼 수 있습니다.
플라톤은 영혼을 이성(logos), 기개(thymos), 욕망(epithymia)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눕니다. 즉 자기를 하나가 아니라 여럿으로 구분을 하는 것이지요. 사람의 영혼은 이렇게 여러 힘이 각축하는 곳이어서 한결 더 나은 부분이 한결 더 못한 부분을 제압하고 이길 때 바로 그 때를 “자기 자신을 이긴다” 로 말했습니다. 즉 이성적인 부분이 기개와 욕망을 통제하여 영혼의 조화를 이루는 상태며 이것을 플라톤은 ‘절제’로 보았습니다. 또 반대로 영혼의 조화가 깨져 “자기 자신에 진다”가 될 때를 ‘무절제’로 보았습니다.
그가 <국가론>에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은 이런 내면의 승리가 궁극적으로 정의로운 인간을 형성하는 것이고 이상적인 삶과 공동체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봄, 교회력은 무겁고 아픔의 계절을 보내곤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꽃 나들이를 가지만 우리는 아이러니하게 이 계절에 죽음을 묵상하고 고난과 고통 받음에 대해 공감하며 그것을 가져오려고 합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 찬란한 계절에 주님의 죽으심이 함께 공존하는 것이 무척 신비롭구나.....
그런 관점에서 죽음과 반대되는 개념인 영광은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죽어 보이는 마른 가지에서 환한 생명의 꽃이 피어나는 것과 또 그렇게 피어난 꽃은 동시에 죽음으로 가는 반환점을 넘어선 것처럼. 사는 것과 죽음은 다르지만 동시에 하나의 출발이기도 하고 또 종착점이기도 한 삶의 신비가 오롯이 이 봄에 그리고 수난 절기에 담겨져 있습니다.
플라톤은 자신을 이겨 영혼의 조화로운 상태를 절제라고 표현했지만, 성경에서 절제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중의 하나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이 영혼의 부족한 부분을 다스려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참 생명을 주시는 '성령하나님의 살아계심' 의 표현이 바로 절제라는 것이지요. 절제는 결국 이성의 활동 영역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흘러나옴’임을 생각할 때, 이 찬란한 꽃의 계절에 고난의 십자가를 묵상하는 것이 그리고 죽음과 영광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임을 이해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꽃기운으로 가득한 이 계절에 사순절 묵상을 하며 산책길을 걷게 될 때에 우리는 예수님의 절제를 묵상하게 됩니다. 화려하지만 가볍지 않고, 진중하며 떠들썩하지만 요란하지 않고, 고요한 산책길의 봄길에서 십자가의 길로 묵묵히 걸어가신 주님의 뒷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돌아오는 주일이 바로 그런 봄길을 통해 죽음으로 들어가신 주님을 기념하는 <종려주일>이기도 합니다. 영광과 죽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자리.
꽃기운 가득한 산책로를 바라보며 이 죽음과 부활생명의 신비를 묵상하며 이 사순절편지를 띄웁니다.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