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컬럼


사순절 편지-4 <나를 의심하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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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의 이름>이라는 소설의 저자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단지 소설가 일뿐만 아니라. 기호학자, 미학자, 언어학자, 철학자, 소설가, 역사학자등 그 분야가 다양한 사람입니다. 그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에서 퍼스널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지식을 쌓은 박식한 사람이었는데 그가 이탈리아에서 은밀하게 꿈틀거리던 파시즘과 싸워왔던 사람이라는 것은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의 싸움의 방식은 좀 달랐습니다. 누구의 표현대로 그는 웃으며 화내는 방법에 대해 고민을 했고 그런 방식을 취했습니다. 사람을 살상하고 말살하는 잔인함에 대해선 정색하며 분노해야 하지만 지배적인 어리석음에 대해선 웃으며 화 낼 수 있다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움베르토 에코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데카르트가 말했던 것과는 달리 세상 사람들이 가장 공평하게 나누어 가진 것은 양식(bon sens)이 아니라 어리석음이다.” 이 말에 근거해 생각해 보면, 어리석음에 관해서 인간은 가장 공평한 존재인 듯 싶습니다.

 

    오늘은 성금요일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날이지요.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이 한 날, 하늘의 왕이시며 모든 만유가운데 계신 분께서 단 하나의 이유 오직 당신이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합법적으로 그 대가를 지불하시고 우리 살리기 위하여 기꺼이 죽음 안으로 들어가신 그 거룩한 걸음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당신이 세우신 합법적인 방법으로 대가 지불을 마치신 주님은 이제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으시고 생명으로 다시 부활하여 그 사랑한 사람 안에 오셨음을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사시기 위한 대가를 지불한 과정이 녹녹치 않은 과정이었습니다. 고난 주간 새벽예배에서도 말씀을 나누었듯이 사람의 몸을 입으신 결과 그분은 외로우시기 했고 고통스러웠으며 때론 견디기 어려운 부담을 가지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통과 외로움을 함께 나누고 짊어질 제자들이 없으신 가운데 홀로 그 과정을 마치시는 것은 평범한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것이 아버지의 뜻임을 더 분명하게 받아들이셨을 때, 예를 들면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칼을 들었을 때. “멈춰라” 하셨던 하나님의 일하심을 조금 기대하셨는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이 십자가의 길이 온전히 하나님의 뜻임을 아셨고 피할 수 없는 잔임을 분명히 하였을 때부터 그분의 행보는 거침이 없으셨습니다. 헤롯이라는 분봉왕 앞에서도 담대하셨고 재판정이나 그분을 희롱하고 조롱하고 때리는 일에도 주님은 물러섬이 없으셨습니다. ‘그 모든 것을 <인간이 어리석음>으로 보셨던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셨던 것을 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고 합니다. 일곱 개의 말을 하셨다는 것이지요. 그중의 첫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Πάτερ, ἄφες αὐτοῖς, οὐ γὰρ οἴδασιν τί ποιοῦσιν)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기도 작정하시고 그로 인해 담대한 마음으로 십자가에 올려 지셨을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 아래에 모인 사람들을 보셨습니다. 주님께서 보신 것은 어쩌면 우리 사람들의 어리석음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리석음엔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기며 저들에게도 다시 기회가 있음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겠지요. 움베르토 에코가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싸우며 취했던 것도 어쩌면 이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셨던 그 말씀과 마음과 비슷한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이 성금요일, 새벽예배에 이런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사실 우리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아, 대단히 자신 있게 무언가에 대해 말하고 평가하고 결심하고 그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많은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사실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나 자신을 의심”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나는 정당한가?’, ‘나는 합법적인가?’, ‘나는 정말 예수님을 잘 믿고 있는가?’

 

    성 금요일, 이렇게 나 자신을 의심하는 것. 이것이 공평하게 어리석음을 나눠 가지고 손에 망치를 들고 있는 우리를 향한 자비의 기도를 하신 십자가 위의 주님을 향한 우리가 취해야 할 가장 작은 일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이 마지막 사순절 편지를 띄웁니다.

 

    그리고 이 하루, 이 말씀을 묵상하는 것 가운데, 오늘 저녁 <성(聖) 금요일 말씀 묵상 예배>에 만나길 바랍니다.

오, 주 예수 그리스도여......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3: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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