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컬럼


함께 걷는 사순절 편지(9)

함께 걷는 사순절 편지(9)

-꾸밈이 없는 사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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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쪽 지방의 매화가 활짝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리고 그 매화축제에 상춘객들이 붐빈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꽃 축제에 꽃을 즐기러 가는 사람들이 붐빈다는 아주 일상적인 소식이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요즘, 이렇게 늘 있어야 하고 늘 일상적이어야 하는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풍경 안에 살다보니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들이 얼마나 우리가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지를 더 깨닫게 됩니다.

  몇 주 전 주일 말씀에서 <보들레르>의 산문시 ⌜너그러운 노름꾼⌟ 이라는 시를 함께 나눈 적이 있습니다. 시인이 마귀들의 왕인 사탄을 만난 이야기입니다. 마음씨 좋은 늙은 귀족의 풍모를 지닌 마왕은 온갖 지식에 통달한 존재이며, 특히 인문학에 이르러서는 그 체계 하나 하나를 훤히 꿰뚫고 있는 존재인데, 이런 마왕도 딱 한 번이긴 하지만 간담이 서늘해진 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어느 아주 예리한 설교자가 강단에 서서 “악마의 가장 교묘한 술책은 바로 그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에게 믿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결코 잊지 말라” 하고 설교를 할 때였다고 합니다.

  시인이 어떤 의도를 했던지 우리는 이 시 안에서 <악의 평범성> 또는 악이 무섭지 않고 우아하기도 하며 지적이고 많은 사람들의 흠모를 받을 만한 모양을 지녔다는 그래서 온갖 미명을 동원하여 받들고 있는 제도와 관습 속에 교묘히 숨어들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은유를 발견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이 시기에, 보들레르의 이 시를 생각해 보니, 정말 놀랍게 딱 들어맞는 일들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신천지 집단의 생존방식을 생각해 보니, 바로 이 마왕의 존재 방식과 너무 유사하네요. 자신의 이름을 감추고 마치 세상의 이치를 다 설명할 수 있다 하며 여러 가지 우아한 방식으로 젊은이들에 접근해서 그들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그 존재 방식이 시인이 말하는 방식과 너무 일치가 됩니다.

  우리 주님의 사랑의 표현인 <십자가>는 그런 면에서 너무 거칩니다. 사람들이 불편해 하기도하고 쉽사리 다가서기 어렵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주님의 표현방식입니다.

  “생명에 이르는 길은 협착하고 그 문은 좁다”

  복음은 사람을 속이기 위해 여러 가지 은유와 형용사를 동원하지 않고 직설적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들었지만 주님의 곁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인데 어떻게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없는 것을 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주님의 십자가는 비록 거칠고 어려워 보이고 쉽사리 지기 힘들어 보이지만 생명의 근원이 그곳에 있기에 오늘도 우린 주님의 십자가를, 그분의 죽으심을 그리고 부활하심을 우리는 묵상을 합니다.

 

  이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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