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컬럼


함께 걷는 봄 길 편지(5)

[생명과 비료가 되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누가복음 24:32-34)

교회 앞을 흐르는 한강 농업용수 수로의 물 향기가 짙습니다. 메마른 봄 날 이 대지를 적셔줄 수로의 물처럼, 몇 달째 지속되고 있는 감염병으로 인한 우리들의 메마른 대지도 그렇게 촉촉하게 적셔지길 소망해 봅니다.

어제 봄 길 편지에서 우연히 만난 성경을 읽고 만주 봉천에서 세례를 받은 우리나라의 처음 기독교인들인 의주 사람들의 얘길 나눴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듯 ‘에티오피아의 내시(관리)’ 가 빌립이 전해준 진리에 의해 이방인의 세례자가 되듯이 우리나라의 처음 기독교인들도 이렇게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하나님의 복음을 통해 세례자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요즘처럼 ‘대면 예배’ ‘현장예배’를 비록 오랫동안 드리지 못했지만 단지 그 이유만으로 우리들의 믿음과 그 신앙생활이 저하된다거나 또는 소실되는 일들이 생긴다면 이 처음 기독교인들의 역사를 다시 한 번 새겨 보는 것도 좋은 일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처음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뒤 흔들어 놓았던 <성경>을 누구든지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의주 사람들에 의해 한글로 번역된 성경이- 당시엔 <쪽 복음> 이라 할 수 있는데- 조선 땅으로 들어오기 위해선 국경검문소를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쇄국의 분위기가 있었던 땅에 성경을 들여오는 일은 많은 희생을 감내해야만 하는 일이었지요. 그래서 통과가 여의치 못하면 국경 근처의 여관에 성경을 보관해 놓곤 했는데 점차로 쌓여진 성경책의 양이 꽤 되자, 국경수비대의 검문을 두려워한 여관 주인이 이 성경을 처분하길 요청합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눈물을 머금고 이 성경을 압록강 강변에서 태워서 처분을 하는데 교회사 책에 그 당시 선교사의 말이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성경으로 깨끗하게 씻긴 물을 마시는 한국인에게 반드시 생명이 될 것이요, 성경 태운 재를 뿌리운 한국인에게 반드시 비료가 되리니 한국 교회의 발전은 가히 기약할 것이라”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쪽 복음>이 갖은 방법으로 조선 땅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1884년까지 들여온 쪽 복음이 무려 9.500여권이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들여온 복음서는 성경을 ‘매서인’ 또는 ‘권서’ 라고 불리 우는 사람들에 의해 마을 마을 마다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압록강과 북부 서해안 지역에서 이렇게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이 무려 170여명이나 되었다고 하니 마음의 문을 열고 이 말씀을 들을 때 생겨나는 그 영적인 힘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태워진 성경책이 정말 생명과 비료가 되었던 것입니다.

비록 이전과 같이 활발한 찬양이 들리지 않고 발길이 뜸해진 예배당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복음의 능력>도 뜸해지고 희미해진 것은 아닙니다. 고요히 머물러 한 늦은 저녁에 우리의 마음에 담는 성경말씀은 그 어떤 것보다도 힘이 있고 능력이 있어 우리를 결단하게 할 것이고 흔들리는 우리들을 굳건하게 세우는 힘이 있습니다. 이것은 저의 바램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그 역사들을 다시 확인하는 것입니다.

절망의 마음으로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가 풀어서 말씀하시는 그 진리를 듣고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철수했던 그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절망의 자리를 희망의 자리로 볼 수 있게 했던 그들의 마음 안에 생겼던 그 용기. 확신 그리고 믿음이 바로 <풀어서 말씀하시는 복음을 듣고(보고)> 생겼던 것이지요.

수로를 흐르는 물을 보면서 우리의 마음과 눈에도 이렇게 영혼의 대지를 적시는 <쪽 복음>의 역사가 들어오길 소망합니다.

 

이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