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컬럼


함께 걷는 봄 길 편지(8)

[그것으로 넉넉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한복음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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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중에 찾아온 니고데모>

 

 

어제는 참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습니다. 거친 봄바람은 익숙해지기 어렵습니다. 화사하게 핀 봄꽃의 반대편에서 그 화사함을 날려버릴 듯한 기세는 봄바람과 친해지기 어렵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겨울바람과 달리 그 바람으로 이제 나무와 식물들은 ‘수정’을 하게 될 것이고 정체된 겨울의 공기들을 뒤집어 놓아 새로운 하늘의 기운들을 실어 나르기도 하겠지요. 사람의 짧은 정서와 눈으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다 볼 수는 없겠지요.

영원한 삶에 대해 평상시에 깊은 관심이 있었던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 때 주님은 니고데모에서 영생을 위해 사는 믿음의 사람들을 설명하시면서 성령님을 <바람> 이라고 비유하십니다. 그러면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요3:3) 고 선언 하십니다. ‘다시 태어남’ 즉 ‘거듭남’은 우리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씻어 정결케 하시고, 당신 숨결을 우리에게 불어넣어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으로 호흡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재창조의 신비가 우리 가운데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원리를 니고데모는 이해하기 어려워했습니다. 그때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 바로 <바람과 같은 성령>님입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반응하지 않고 자신이 붙잡은 것을 고정하고 놓치지 않으려는 그에게 <‘그 바람’에 너의 존재를 맡겨라> 고 말씀 하시는 듯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휘감으시면 바람이 그러하듯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지만, 넉넉한 가벼움으로 성령을 따라 날아오를 것입니다. 한 번 날아오른 연은 바람이 부는 대로 하늘을 만끽하듯이, 성령을 따라 날아오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의 자유와 행복을 만끽할 것입니다. 비록 발을 땅에 딛고 살아가기에 땅에서 감당해야 할 땀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그 시선과 마음은 하늘의 이상으로 차 있기에 사사로이 절망하거나 불의한 유혹에 영혼을 팔지 않을 것입니다.

부산, ‘해운대교회’에서 목회하시는 선배 목사님이 종종 제게 좋은 글을 보내 주시는데 지난 번 <바울 수도회>의 기도문이라는 글을 보내 주셨습니다.

“주님! 오늘 제게 무슨 일이 생길지 저는 모릅니다. 주님께서 영원으로부터 저의 더 큰 선을 위하여 미리 보고 마련하신 것 외에 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뿐이오나 그것으로 넉넉합니다.”

이 수도회의 기도문과 같은 “그것으로 넉넉합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도록 자신의 의지와 때론 고집으로 단단히 땅에 뿌리박힌 나의 존재를 바람과 같이 우리에게 오시는 성령님에게 맡길 수 있는 ‘연’이 되고 싶습니다. 그분이 부는 대로 훨훨 날아오르는 그런 사람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참 “그것으로 넉넉합니다.” 하고 소리치고 싶습니다.

 

이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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