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컬럼


함께 걷는 봄 길 편지(9)

[원고지와 배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로마서 12:15)

 

<강아지 똥> <몽실언니> 등 많은 아름답고 절절한 동화들을 쓴 작가 권정생 선생. 그는 안동 일직교회 문간방에서 종지기로 살다가 1980년대 초 교회 뒤 빌뱅이언덕 밑에 작은 흙집을 짓고 살며 작품 썼습니다. 그리고 2007년 5월 17일, 71세의 나이로 하나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80년대 신학교시절, 권정생 선생의 수필과 글은 제게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종교와 신앙 그리고 기독교의 교리를 이렇게 일상화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심한 폐결핵을 앓았던 그분은 종종 자신이 살던 시골교회 문간방을 찾아온 아이들과 이런 얘길 나누기도 했습니다.

"집사님 밤에 혼자서 무섭지 않나요?“

"무섭지 않다. 혼자가 아니고 내가 가운데 누우면 오른쪽엔 하느님이 눕고 왼쪽엔 예수님이 누워서 꼭 붙어 잔단다"

그분은 그동안 책 인세로 들어온 돈을 거의 한 푼도 쓰지 않은 채(제 생각엔 쓸 줄 모르고..) 통장에 10억이 넘는 돈을 가지고 있었는데 죽기 전에 쓴 유언장에서 “아이들을 위해 쓴 글로 얻은 돈이니 모두 아이들을 위해서 써 달라”는 유언을 남기셨지요. 주변의 사람들은 ‘재단’을 만들어 지금껏 그 뜻을 잘 지켜내고 있습니다.

그분의 일화 가운데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그가 어느 출판사로부터 동화 한 편을 부탁을 받았다 합니다. 그러면서 원고료는 한 장에 삼천 원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해 가을배추 값이 똥값이었습니다. 김장 배추 한 포기에 100원씩 했습니다. 그는 원고지 한 장에 배추가 한 리어카씩 쌓인다고 생각하니, ‘겁이 나서’ 글을 쓸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끝내 출판사의 원고 청탁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믿음이 희화화 되고 신앙생활이 표리부동(表裏不同) 할 때, 그것이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한 시선이 될 때, 저는 종종 오래되어 누렇게 변한 그분의 옛 책을 뒤적입니다. 그러면서 그가 어떻게 하나님을 만났는지를 다시 눈과 마음에 담습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자기화 할 수 있는 능력, 타인의 즐거움에 대해서 공감할 수 있는 능력, 그 능력은 바로 심한 질병 가운데서도 “하나님에 내 오른쪽에 누워 계시고 예수님이 왼쪽에 누워계시니...”라고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의 시선 가운데 나오는 것이겠지요.

원고료 한 장에 삼천 원, 배추 한 포기에 백 원. 글자와 배추 사이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하고 생각해 보는 이 아침입니다.

 

이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