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컬럼


함께 걷는 봄 길 편지(10)

[다시 찾은 평화!]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데살로니가전서 5: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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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강림사건>

 

어제 편지에서 권정생 선생의 ‘배추와 원고지’ 얘길 쓰다 보니 아주 오래전 <과외 공부>를 하러 다니던 시절에 들었던 얘기가 꼬리를 물었습니다. 지금은 연로하셔서 힘이 많이 빠지셨지만 당시엔 펄펄 날던 한신대의 ‘정태기 교수’의 강의를 들을 때의 얘기입니다.

그의 전공이 ‘목회 상담’이니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외에도 ‘상담’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한 번은 이런 저런 일련의 과정을 지난 후 자신이 상담을 해 주었던 어떤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한통 받게 됩니다. 한 번 만나서 차를 마시자는 전화였습니다. 정교수는 뭐 대수롭지 않은 마음으로 차를 마시는 자리에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아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그런데 그분이 헤어지는 자리에서 어떤 검은색 가방을 하나 내밀더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집에 가서 열어 보십시오” 라고 했습니다.

정교수님이 집에 와서 그 가방을 열어보니 가방 안에 현금이 가득했습니다. 대략 1억 정도의 금액이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1억이면 아주 큰 돈 아닙니까? 당시로선 더 큰 금액이었지요. 놀란 마음에 가방을 닫고 집 은밀한 곳에 가방을 두게 됩니다. 사실 돈 가방을 내 밀었던 그 ‘어떤 사람’ 에 관한 이야기도 있지만 오늘은 정교수님이 그 일로 인해 겪었던 부분만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기억을 더듬어 정리해 보자면 정교수님은 이 얘길 강의 시간에 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평화가 사라졌다”

그 1억이라는 돈 가방이 집에 있으니 집을 나가서도 ‘집 대문을 잘 잠그고 나왔나?’ 생각하게 되고 또 집에서 잠을 잘 때도 ‘문단속을 잘했나?’ 하고 다시 일어서게 되고, 이렇게 어디서든지 무엇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자꾸 집에 있는 돈 가방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가 살던 집이 학교 관사였는데 이전엔 문을 잠갔는지에 대한 의식이 없었는데 갑자기 ‘문을 잘 잠갔는가?’ 하는 어떤 불안이 점점 자신을 점령해 가더라는 것입니다. 일상적인 마음의 평화가 슬그머니 사라진 것입니다. 물론 이 불안함의 모든 원인이 ‘돈 가방’만은 아닙니만... 결론은, 한두 주를 보낸 뒤에 정 교수는 다시 그 가방을 돌려주게 되고 다시 <평화>를 찾았다는 그런 얘기입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매우 단단해 보여도 사실 어떤 것에 아주 쉽게 점령당하고 침해를 당하기도 합니다. ‘나는 의지가 굳은 사람이니 문제가 없어’ ‘나는 그러한 일들과 환경에 상관없이 지낼 수 있어’ 하는 생각은 사실 더 위험 합니다. 왜냐면 자신을 향한 그런 믿음이 흔들리고 뒤집힌 결과를 만나게 될 때 더 큰 후유증을 겪기 때문입니다.

‘어떤 모양이라도’ 라는 말씀 안에는 죄와 악이라는 것이 우리가 규정하는 모습대로만 나타나거나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만일 악과 죄가 우리가 규정한 모습대로만 존재한다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죄와 악을 잘 구별하고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모양> 이라는 것 안에는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아름다운 방식으로도 ‘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어떤 모양>의 죄들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 하지 않도록 그 <돈 가방>들을 아예 만나지 않거나, 설령 집에 들어와 있다하더라도 속히 그것을 비워내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릴 삼키려는 죄들을 잘 분별하고 거절하는 용기를 구할 뿐입니다.

 

이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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