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컬럼


함께 걷는 봄 길 편지(12)

[믿음의 방패]

이 모든 것에 더하여 믿음의 방패를 손에 드십시오. 그것으로써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모든 불화살을 막아 꺼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엡 6:16)

 

평안도 말에 <어덕서니>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지금이야 듣기 어려운 말이 되었지만 한국 민담에 등장하는 요괴나 도깨비를 의미한다 합니다. 다른 말로는 ‘어둑서니’ ‘아둑시니’라고도 하는데 ‘어둑하다’ 라는 말의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렇게 어둠이 점점 땅으로 내려 어두컴컴해질 때 그 어둠에 쌓인 사물이 도깨비로 보이는 것을 표현한 말이겠지요. 헛것을 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덕서니> 라는 말에는 이렇게 아주 두렵지는 않지만 그래도 무서운 그러나 분명한 실제가 없는 헛것과 같은 존재들을 말할 때 <어덕서니> 라고 말하게 됩니다. 사람의 상상의 결과물인데 상상 안에 갇혀 있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실재적 영향들을 주는 것들이라 할 수 있겠지요.

<‘어덕서니’ 는 있다고 생각해서 쳐다보면 점점 커져 하늘에 닿았고, 없다고 생각하고 보면 차츰 줄어들어 땅속으로 꺼져버렸다. 진실의 빛을 쐬면 어덕서니는 꺼져버린다.> 라는 글을 메모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있다고 여기면 점점 커져 압도하는 존재가 되고, 없다고 생각하면 점점 쪼그라들어 사라져 버리는 특징이 있습니다. 나에게 어덕서니 같은 것들은 무엇일까?

우리 인생의 주변에 이런 많은 <어덕서니>와 같은 것들이 어른거립니다. 본질은 ‘헛것’ 임을 알고 있지만 내 마음의 두려움과 연약함 그리고 상상의 날개로 키워내 도리어 그 ‘헛것’에 압도당하며 사는 실재의 존재들을 왕왕 만나게 됩니다. 병리학적으론 <염려증>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많은 염려증들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건강염려증’ 등이 있고 이 염려증이 우리의 마음을 하나하나 부식시켜 나가다 보면 <조현병> 같은 참으로 치유하기 어려운 질병으로 고착화 될 수 있습니다.

<혐오> 같은 것들도 그런 부류에 포함시킬 수 있을 듯 싶습니다. 한 번도 만난 적도 경험해 본 적도 없지만 바람에 흘러가는 듯한 소문을 듣고 또는 ‘그럴꺼다’ 라는 막연한 상상을 통해 혐오가 증오가 되면서 서서히 자신의 마음이 굳어져 가는 것들도 이런 어덕서니의 활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불쑥 모습을 드러내어 우리 앞에 떡 하니 서 있는 ‘어덕서니’들과 같은 일들이나 마음들을 잘 다스릴 수 있는 훈련이나 연습들이 평상시에 있어야 합니다. 헛것이 나의 실존을 잠식하지 않도록 작은 어덕서니가 일어설 때 그것이 헛것임을 우리의 온전한 의식으로 넘어뜨린다면 이제 점점 이러한 헛것들이 힘을 발휘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겠지요. 이런 훈련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우릴 인도합니다.

이 모든 것에 더하여 믿음의 방패를 손에 드십시오. 그것으로써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모든 불화살을 막아 꺼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엡 6:16)

하나님의 대적들이 우리의 마음을 연약하게 하며 태워버릴 요량으로 불화살(화전)을 쏘아댈 때 주의 말씀은 <믿음의 방패>를 들라 명합니다. 믿음의 방패가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믿음이란 들어야 하고 무엇을 듣냐면 바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덕서니들을 다스리기 위해선 염려와 공포, 그리고 혐오들이 우리의 마음을 잠식하지 못하기 위해선 바로 주의 말씀을 통해 그 악한 자들이 우리 마음을 향해 쏘는 불화살에 생명의 찬물을 부어 꺼트려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방패>를 드는 일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알게 모르게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고 잠식해 들어오는 헛것들, 구체적으론 원수의 불화살들을 잘 막아내는, 믿음의 방패를 굳건하게 들고 이 시대를 잘 통과하고 살아가는 멋진 모습들이 이제 5월이 삶의 모양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이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