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컬럼


함께 걷는 봄 길 편지(14)

[두만강 푸른 물에...]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명기 5:16)

 

오늘은 어버이날 입니다. 모든 이 땅에 어버이들. 그리고 또한 장차 어버이가 될 사람들로 어버이들에게 공경을 표하는 분들을 축복합니다.

카네이션 꽃을 가슴에 달아 드리며 이 세상의 어버이들을 축하하고 그들의 삶을 기념하는 날에 가끔은 그 꽃이 가슴 시리게 할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붉은 카네이션 색이 어버이들이 이 세상을 살아오며 감당해야 했던 그 삶의 무게를 표현하는 피와 같은 붉은 색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아버님은 이북 출신의 실향민 이었습니다. 기억하기론 <함경남도 정평군 신상면> 출신으로 전쟁 통에 흥남부두 철수에 남으로 삶의 자리를 타의에 의해 옮긴 전형적인 실향민 이었습니다. 종종 어깨에 얹어진 삶의 무게가 무거웠을 때 이런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떠나던 그 배는 어디로 갔소.”

처연한 마음으로 당신의 고향과 아버지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불렀던 그 노래 가사는 그 노래를 불러야만 했던 그 마음의 모양을 대신하는 노래 가사 치곤 그러나 서정적이었습니다. 아마 어쩌면 당신 자신의 그 마음 한 구석을 찔렀던 그 실향의 아픔을 자식들에겐 들키지 않으려고 했던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 풀어 놓고 고향과 아버지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것도 혹은 사치로 여겨질까봐 했던 그 세대들의 어버이들의 공통적인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한국의 근현대사들을 통과한 세대만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어버이들은 어버이가 아닌 자리에서 어버이가 되면서 이렇게 자신의 욕구와 생각을 한 걸음 뒤로 밀어 놓고 이제 그 다음 세대를 세우고 책임지는 일들에 충실하며 살아왔습니다. 그 본질적이고 때론 본능적인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인류사회가 지금까지 이어져 왔겠습니까? 그들도 한 때는 어버이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온 사람들이고 이제 어버이들이 되어서 그 받은 사랑을 다시 되돌려 주고 갚으며 살아왔던 것이지요. 그러기에 모든 인류는 ‘어버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지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버이를 공경하는 것은 곧 그렇게 공경하는 자신의 삶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이고 그 공경은 또 다른 공경을 만들어 내며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의 삶이 얼마나 존귀한 것인지를 증명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어버이날에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는 것은 곧 자신의 가슴에 달릴 카네이션의 미리 보기입니다. 그러기에 부모 공경은 일방적인 희생이 될 없습니다. 그 공경이 곧 나를 존재케 하는 일이며 내 삶을 지속시키고 부요케 하는 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사회를 시작케 하시며 이 부분을 완성된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신명기 5:16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기 위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하면> 이라는 단어 안에서 인간의 근원적 태도와 행함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도 자신의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두만강 푸른물에...” 와 같은 노래들을 부르시는 ‘오늘의 어버이들’ 에게 존경과 공경의 마음을 담아 붉은 색 카네이션 하나 가슴에 올려 드립니다.

 

이 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