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컬럼


함께 걷는 봄 길 편지(18)

[이미 심겨져 있는 본성]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

 

요즘 제게 예배당 외에 또 하나의 거룩한 성소는 <산>입니다. 한창 젊은 시절처럼 가뿐하게 산을 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서너 시간 정도 천천히 움직이는 산행은 지친 몸과 마음을 다시 되새김질 해보는 또 하나의 기도 시간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 짧은 산행 길 중에 작은 풀잎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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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지만 그 모양은 아주 선명했습니다. 어떻게 <하트> 표시를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사랑의 징표를 <하트> 모양으로 표시한 것은 단순히 심장의 모양을 본 뜬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창조 안에 깊이 녹아들어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개발하는 것 따로 고안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녹아들어’ 있는 사랑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찾아내는 것이고 그것을 나타내는 것이 참 사랑일 수 있습니다.

〈습관의 문법. 강준만 저(著)〉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영국 심리학자 리차드 와이즈만( Richard Wiseman)은 거리 곳곳에 지갑 240개를 떨어뜨려 두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 실험을 했습니다. 지갑에는 현금이 없고 개인적인 사진, 신분증, 기한이 지난 복권, 회원증 한두 장, 그 밖의 자잘한 물건들이 들어 있었는데, 지갑마다 다른 것은 사진이 들어 있었습니다.

각 지갑에는 노부부의 사진, 가족사진, 강아지 사진, 아기 사진을 넣어두었으며, 사진이 없는 지갑도 있었습니다. 실험 결과 지갑의 회수율에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아무런 사진이 들어 있지 않은 지갑의 회수율은 15%, 노부부의 사진이 들어 있는 지갑의 회수율은 25%, 가족사진이 들어 있는 지갑의 회수율은 48%, 강아지 사진이 들어 있는 지갑의 회수율은 53%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린 아기 사진이 들어 있는 지갑의 회수율은 88%였습니다.

사람들이 길에서 지갑을 발견했을 때 사람들의 의식은 “지갑을 주인에게 찾아주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 내가 포기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을 따져볼 때 귀찮은 일이다.” 라고 여겨 지갑을 돌려주는 일을 망설이게 됩니다. 그러나 연약한 아기의 사진을 보는 순간 지갑주인을 향한 어떠한 <마음>들이 발현되고 느껴져서 기꺼이 돌려주려는 무의식이 작동하며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실험결과였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안에는 <사랑이시다> 라는 하나님의 본성도 같이 심겨져 있습니다. 그 본성이 세상의 온갖 영향으로 덮여 있고 파묻혀 있습니다. 믿음의 본질은 이러한 심겨진 하나님의 형상을 가리운 것들이 벗어지고 온전하게 그분이 형상(본성)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내게 덥혀진 수건이 벗어지고 육신이 깨어지도록 기도할 이유와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이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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