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컬럼


날줄과 씨줄로 엮는 여름편지(1)

[기도해야 할 이유]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9: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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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편지를 통해 믿음의 교제를 나누게 되어 반갑고 감사합니다. 짧은 글이 성도님들에게 신앙의 작은 밑거름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띄우겠습니다.

요즘, 다시 예전에 일독했던 책을 보게 됩니다. 몇 차례에 걸쳐 <지렁이의 기도>안에 있는 내용을 가지고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하여 박사 학위를 마친 후 현지 대학에서 좋은 조건으로 교수 자리를 얻은 이가 있었다. 그녀는 철저한 무신론자였다. 학위를 취득하고 좋은 직장을 구한 후 얼마 안 되어 아이를 낳았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모든 일이 자신의 뜻대로 탄탄대로를 달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갓 태어난 아이에게 지독한 아토피 증상이 있었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아이가 가려움을 참지 못해 제 살을 쥐어뜯으며 밤새 우는 모습을 보면 그녀는 엄마로서 마음이 갈기갈기 찍어졌다. 이런 삶이 몇 년이나 계속 되었다. 마침내 그녀는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 앞에서 이런 탄식을 토해 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럴 때 기도할 신이라도 있건만, 나는 지금껏 살면서 기도할 수 있는 신도 못 두었던가?”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 또 완벽한 조건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여기며 살 뿐이지요. 그래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그 불완전을 채우기 위해 절대자에게 기도하는 존재입니다. 세상의 문명과 환경이 변하며 사람은 스스로 완전하고 완벽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기도하지 않는 존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얘기에 뭇 사람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우연의 일치야” 그러나 20세기 영국의 그리스도인 지도자중 한 사람이었던 ‘윌리엄 템플’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뭐라 말하든, 분명한 것은 기도했을 때 ‘우연의 일치’도 일어났고 기도를 멈췄을 때 ‘우연의 일치도 멈췄다” 라고.

삶이 아무리 화려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진행된다 하더라도 그렇게 환상적으로 자신의 삶이 이뤄져 가는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리고 싶어도 감사할 대상이 없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그 내면의 공허함을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었다는 한 때 무신론자가 되었던 신학자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기도할 때 <우연의 일치>라도 일어납니다. 잠시, 하루의 시간 중 아주 작은 일부라도 하나님을 향한 기도의 시간을 내어 부족한 삶의 내용을 채우시는 은총을 체험하는 이 7월의 첫 발걸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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