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컬럼


날줄과 씨줄로 엮는 여름편지(4)

[내 마음의 우산 하나 펴서]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5: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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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늘의 성경말씀은 지금도 제게 큰 가시이고 아픔이기도 합니다. 나이가 먹어감에 그래도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젊어서 이 말씀은 제 마음을 무척이나 쿵쾅거리게 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주일에 적어도 10번 정도의 말씀을 전하는 제 삶의 특성상 10번의 말씀을 들고 강단에 서기 전에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없어야 하는데 그런 삶과 인생을 산다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고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늘 원망을 들어야 하는 일은 다반사이고 또 남을 원망하는 마음이라든지 또 화목하지 못한 마음들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가끔 아내와 소소하게 말다툼을 하기도 하고 또 목회 안에서 어떤 불편한 마음들을 가지고 강단에 서는 날은 이 주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한 고로 무척이나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세월이 지나니 물론 이런 횟수는 점점 줄어들게 되었고 또 <예물을 제단에 드리기 전> 그 마음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과 지혜들을 발견하는 은총을 또 입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 말씀은 제게 등짝 서늘한 말씀이 되어 목회자로서 주님 앞에 설 때에 하나의 날카로운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일은 모세에게도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출33:23> 모세도 주님의 얼굴을 감히 볼 수 없었고 그분의 등을 볼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의 예로 그분의 영광 앞에 서는 일이 얼마나 놀랍고 또한 신비로운 일인지를 말씀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 준비가 철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은 단지 하나님만을 위한 일방적인 자리가 아닙니다. <예물을 드리기 전> 이제 나의 삶의 자리를 돌아보아 어긋나고, 상처 난 곳이 있고, 불화와 원망이 있는 곳을 치유하는 것이며 또한 사람의 회복을 위한 자리가 바로 이 예배의 자리, 즉 하나님 앞에 서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설 때마다 우리는 더 성장할 수 있고 더 성숙한 인격을 돌볼 수 있으며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람들로서의 참된 관계들이 세워져가게 됩니다. 아주 작은 예배자가 점점 영적인 거인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만나는 축복이지요.

<형제와 화목하고 와서...> 라는 말을 실천하는 일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닙니다. 먼저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할 때도 있고 익숙하지 못한 인격을 찾아내야 하는 고단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준비한 예물(마음. 뜻. 소망과 소원)이 계속 내 손에 들려져 있지 않고 하나님께 드려지기 위해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일이라면 비록 매번 성공할 수는 없을 지라도 <예물을 드리기 전 형제와 화해> 라는 말씀이 항상 우리의 기준으로 삼아 그 성공 횟수를 늘려가는 은총의 사건들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장마철 비가 종종 내립니다. 이 때 형제와의 화목을 위해 내 마음에 우산 하나 펴 살며시 내미는 꿈을 꾸어 보는 건 어떻습니까?

 

<우산이 되어>

                이해인

 

우산도 받지 않은

쓸쓸한 사랑이

문밖에 울고 있다

누구의 설움이

비 되어 오나

피해도 젖어오는

무수한 빗방울

 

땅위에 떨어지는

구름의 선물로 죄를 씻고 싶은

비오는 날은 젖은 사랑

수많은 나의 너와

젖은 손 악수하며

이 세상 큰 거리를

한없이 쏘다니리

 

우산을 펴주고 싶어

누구에게나

우산이 되리

모두를 위해

 

이 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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