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컬럼


날줄과 씨줄로 엮는 여름편지(6)

[성령으로 시작하여 성령으로 마치는]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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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길에서 큰 소리로 울고 있는 아이를 보고, 왜 우는지 물었습니다. 아이는 동전 하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아이를 측은히 여겨 주머니에서 동전을 하나 꺼내 주었습니다.

그런데 동전을 손에 쥔 아이가 또 울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동전을 건넨 사람은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는 아이에게 동전을 하나 받았는데 또 왜 우느냐고 물었습니다. 울던 아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동전 하나를 잃지 않았다면 지금은 두 개가 되었을 거잖아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 전철(前轍)을 밟습니다. 동전을 손에 쥐고도 슬피 우는 삶의 모습입니다.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아도 웁니다. 인생의 슬픔과 우울함의 근거는 바로 이 욕심과 탐욕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떠나지 않는 한 인생에 기쁨이 자리할 자리가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래서 <영을 좇아 행하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육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영을 따라 행하는 삶임을 말합니다. 영을 따라 행한다는 것은 다른 의미로 사람의 생활이 영안에서 통제 받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육신의 법은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지금은 두 개일 텐데...” 하는 법이고 영의 통제는 “비록 잃었지만 다시 찾게 되었구나...”하는 법입니다. 육신의 법은 다시 통곡하는 것이고 영의 법은 기쁨으로 회복하는 길입니다.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3)

영으로 시작하여 육으로 마치는 일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육체로 대변되는 끝을 마주합니다. 육체로 마치는 인생은 동전을 손에 쥐고도 우는 삶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다시 이 통곡와 울음의 자리로 내려가지 않기 위해 성령을 따라 사는 길을 갈망하고 추구하는 삶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는 사자’ 와 같이 우릴 삼키려 하는 많은 일들과 환경 가운데서 우릴 건지시고 도우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오롯이 우리의 일상이 되는 은혜를 소망합니다.

 

이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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