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컬럼


날줄과 씨줄로 엮는 여름편지(9)

[새 사람]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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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수련/배철현 저(著))을 읽다가 흥미로운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성공이란 말은 어느 기준에 두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선호하는 단어는 아니지만, 저자는 이 성공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성공에는 두 가지 방해꾼이 있다. 첫 번째 방해꾼은 부러움이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수련을 한 적이 없고, 자신을 우주 안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로 대접하지 못하는 사람은 대개 남을 부러워 한다. 자신을 위한 최선의 기준을 스스로 만든 적이 없기 때문에 남의 기준을 자신의 기준인양 착각한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 길이 고유한 것인 줄 알고 집착하기 시작한다. 두 번째 방해꾼은 흉내다. 흉내는 부러움의 표현이다. 부러움이 정신적인 활동이라면 흉내는 육체적인 활동이다. 흉내를 내는 사람은 진부하다. 사람은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을 표현할 때 독창적이고 매력적이다. 고유함이란 우주 안에서 한 명의 주인을 섬기는 천사와 같은 존재이다. 고유함에는 진정성이 깃들어 있어서 듣는 이의 마음속에 있는 진정성과 공명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아름다운 선율로 변화한다. 흉내는 자신의 고유함을 포기하려는 자살행위이다.”

부러움과 흉내에 대한 생각은 저와 조금 달랐지만 전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겠습니다. 아마, 부러움과 흉내를 통해 결국은 자신이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며 진정한 자아를 추구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공할 수 없다는 결론을 향하는 글이었습니다.

욕심에 해당하는 라틴어는 ‘아와리티아(avaritia)’입니다. 이 단어는 ‘~을 쥐려하다/~을 바라다’ 라는 라틴어 동사 ‘아웨레(avere)’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아와리티아는 자신을 가만히 응시하지 못해 타인의 아름다움이나 타인이 소유한 것을 간절히 원하는 마음입니다.

욕심은 끝도 없고 만족도 없습니다. 그것은 배가 부른데도 더 먹으려 하는 비이성적인 습관이고, 권력을 쥔 자가 더 많은 권력을 휘두르려는 횡포입니다. 성경 안에서는 그래서 이렇게 비이성적인 행위 가운데 속하는 욕심과 욕망에 대한 권고의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욕심을 통해 자아를 바라보지 못하며 타인을 부러워하고 흉내 내는 것으로 인생을 마감하는 것은 비극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기준을 세우지 못해 막연히 타인을 부러워하며 그러한 세상의 삶을 흉내 내는 것을 옛사람들의 일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기준은 하나님의 의와 진리와 거룩함이기에 전혀 다른 가치를 가지고 이를 추구하고 완성해 나가려는 새사람들로 주님은 초대하고 있습니다.

새 사람만이 새 하늘과 새 땅의 사람들이 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들입니다. 참된 성공을 가로 막는 요소들이 내 삶 안에 박혀 있는 부분은 없는지 잘 점검함으로 <성공>의 삶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갑시다.

 

이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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