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컬럼


"주님을 걷다" (길 위에 쓴 편지 1)

[주님을 걷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요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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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태풍이 매섭습니다. 바람과 비가 지나간 자국이 너무 깊게 패였습니다. 추석을 한 달쯤 남겨둔 농촌의 풍경은 대개 꽉 찬 열매들로 가득한 풍경입니다. 그러나 이 바람의 흔적이 농촌의 풍경을 살풍경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어려움에 어려움이 겹치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다음 주 또 한 차례 큰 바람과 비가 지나간다니 창조주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기도할 뿐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거리를 두기 시작하며 가장 가까이 할 수 있는 일이 <길 위에 서는 일> 이었습니다. 감염병 시대 이전에도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길은 거리두기가 없이 나를 받아 주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내가 그 길을 멀리했던 것이었습니다.

 

길은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었으며

길은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했고

길은 관계와 관계를 풍성하게 하는 통로였습니다.

그리고 길은,

무지한 길에서 진리로 나가게 했으며

어두움에서 밝음으로 우릴 움직이게 했으며

억압과 속박으로부터 자유케 했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주님은 자신을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자신을 ‘길’이라 하신 이유는 바로 자신을 걷는 자 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길은 보는 것이 아니라 걷는 자의 것입니다. 걸을 때 길이 될 수 있고 걷는 사람만이 그 길을 소유합니다.

걸으면 많은 세밀한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자동차로 지나 갈 때 보이지 않는 작은 돌. 그리고 이름 가물한 꽃들 그리고 그 위를 지나다니는 작은 벌레들. 그리고 그 길을 감싸고 있는 많은 풍경들.

주님을 걷는 일은 이렇게 그분의 세밀한 것들을 볼 수 있고 알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주마등처럼 지나갔던 주님의 말씀 가운데 세밀한 한 단어가 발견될 수 있고 머리로만 상상했던 주님의 따듯한 빛이 어떤 것인지를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세상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걷지 않고 하나님께로 나가려 합니다. 세밀한 주님의 말씀을 온 몸으로 만지고 느끼지 않은 채 상상과 머리로만 하나님께로 가려 합니다. 결국 그들이 만난 하나님은 길을 통해 만난 하나님이 아니기에 어떤 <우상>에 도달하고 말았습니다. 안타깝지만 오늘 벌어지는 많은 일들이 그 증거입니다.

우리는 우상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상상만을 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비록 느리고 때론 그 길을 걷는 걸음이 버거워도 한 걸음 한 걸음, 차곡차곡 길이신 주님을 걸어 마침내 만나야 하고 도달해야 하는 그 영광의 지점에 서 있어야 합니다.

다시, 단단하게 채비를 꾸리고 <길> 되신 주님을 걷는 일에 제가 손을 내밉니다.

“손 잡으시지요...”

 

서로가 꽃 -

<나태주>

 

우리는 서로가

꽃이고 기도다

 

나 없을 때 너

보고 싶었지?

생각 많이 났지?

 

나 아플 때 너

걱정됐지?

기도하고 싶었지?

 

그건 나도 그래

우리는 서로가

기도이고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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