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나눔
[사순절 묵상] 2024년 2월 22일 목요일
사순 7. 2월 22일 목요일
<곤고한 날의 은혜>
오늘의 말씀_시편 22:23-31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시편 22:24
시편 22편의 전반부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겪은 고난을 상징할 만큼 절망적이고 고통이 가득합니다. 처절한 신음으로 가득하고 본문 속 주인공의 곁엔 원수뿐입니다. 조롱거리였고 사람들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외면했습니다. 아무도 그의 곁에 없었고, 할 수 있는 것이라 곤 하나님께 몸부림치는 것뿐이었습니다. 경각의 위기에서 그는 하나님 의 손길에 의해 건져졌고 시인의 입술은 찬양으로 가득합니다.
시인이 만난 하나님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텅 빈 들판 같은 인생의 위기, 다들 꺼리며 외면하는 시인의 신음에 귀 기울이고 찾아온 유일한 분입니다. '곤고한 자의 곤고를 싫어하지 않는 하나님', 시인이 만난 하나님입니다. 다들 피하는 자리, 끝이라고 여긴 그 자리에 찾아온 하나님입니다.
믿음의 여정이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 영혼에 새기는 과정입니다. 구원은 어둠의 구렁에서 건져지는 더없는 감격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가는 깊은 통찰이기도 합니다. 그분이 어떤 분인 지 알았으니 살아가야 할 길도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 건져주심으로 말미암아 삶에 분명한 이유가 생기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살아가는 이유가 선명해지는 거지요. 삶을 이끌어가는 하나님의 명(命)이 있고, 명(命)이 삶의 이정표가 됩니다. 자기 삶에 이유가 있는 이는 흔들림이 없습니다. 행복하지요. 부족함이 없으니 두리번거리지 않습니다.
마음에 확신이 생긴 시인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습니다. 구원의 감격을 찬송하되 혼자만 기쁨을 간직하지 않고 이웃과 나눕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간증하며 자신이 하나님께 드린 약속을 지키고자 애씁니다. 고난 가운데 품었던 서원을 갚으며 그분과 한층 깊은 관계로 나아갑니다. 더 나아가 시인은 자기 영혼의 풍족함만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겸손한 이)를 먹이며, 연약한 이들의 몸과 마음을 돌보며,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고자 합니다. 곤고한 자의 곤고를 싫어하지 않는 하나님을 만났으니 그 또한 이웃의 곤고에 마음을 기울이고 다가갑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자신이 되어야 할 인생, 하나님이 그에게 원하는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 알아채는 것입니다. 깨닫게 됐으니 순종할 수밖에요. 서원도 기꺼이 갚고자 합니다. 절박한 두려움 때문에 '주님 이렇게 해주시면 제가 이렇게 하겠습니다.’, 거래처럼 출발한 서원일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서원은 하나님과 깊은 관계로 나아가는 통로가 됩니다. 생각과 입술과 마음을 온전히 드리는 헌신이 된 거지요. 두려움에 빠져 거래하려 했던 어리석은 자신조차 넉넉하게 수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 그분의 구원을 체험하는 것은 믿음의 확장을 가져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이 땅의 주재이며 역사의 섭리자일 뿐 아니라 죽음까지도 다스린다고 고백합니다. 죽음도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이 고백은 죽음이 끝이라고 여겼던 구약 신앙의 역사에 거대한 균열을 냈습니다.
믿음의 여정은 우리를 이전 사람으로 남겨두지 않습니다. 하나님 의 구원은 우리를 날마다 새로운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갑니다. 우리는 그 여정의 어디쯤 있습니다.
<기도>
주님, 제 삶의 곤고한 날에 찾아오셔서 저를 어루만져 주셨음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그 감격으로 인해 드렸던 기도와 서원을 되새기며 제 영혼이 지금 어떤 형편인지 돌아보게 하십시오. 그때 찾았던 삶의 이유를 회복하며 십자가를 향해 걸으시며 스스로 곤고한 이가 되신 주님을 붙잡게 하십시오. 도우소서. 아멘.
『사순절묵상집_곁에 머물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