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나눔


[사순절 묵상]2024년 2월 26일 월요일

사순 9. 2월 26일 월요일

<신앙의 화수분>

오늘의 말씀_시편 105:1-42

그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가 행하신 기적과
그의 이적과 그의 입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
시편 105:5

 

    깊고 강렬한 내면적 체험은 겪는 이에게 큰 영향을 줍니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도 화석처럼 쉬 굳어버리지 않습니다. 때때로 처음보다 더 생생하게 떠올라 새로운 깨달음과 변화를 더하기도 합니다. 예언자는 이를 첫사랑이라고 말하고, 믿음의 선진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삶에 인(印)쳐졌노라고 고백합니다. 초기 교회의 박해자였던 사울도 사도행전에서 예수님과 만난 체험을 세 번(행 9:1-19, 22:1-16, 26:12-18)에 걸쳐 증언합니다. 그때마다 바울에게 새로운 깨달음이 더해집니다. 이야기를 억지로 덧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깊이 깨달으며 새로운 눈매를 더하게 된 것이지요.

    이스라엘 신앙의 근본이 되는 출애굽도 그와 같습니다. 강대한 제국 애굽에서 탈출한 후 오직 하나님의 손길에 의지하여 건넌 광야와 야훼의 백성으로 가나안에 정착한 사건은 '신앙의 화수분'이며 언제나 그들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착 후 에도 예언자와 사제를 통해 광야를 기억하길 거듭 권면 받습니다. 왕국 의 성립과 전쟁의 승리 같은 감격스러운 사건뿐 아니라 성전이 무너지고 포로로 끌려갈 때도 광야를 기억하길 요구받습니다. 기억은 전혀 일률적이지 않습니다. 처한 상황에 따라 떠오르는 기억은 다를 수밖에 없지요. 감사의 시간에 광야는 하나님의 한없는 돌보심의 현장이지만, 포로로 끌려가거나 무너진 성전 앞에서는 순종하지 않던 조상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자신들을 보게 합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자비로 가득한 감격의 장이기도 했고, 조상의 죄로 가득한 불순종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출애굽이라는 거울은 오래되었음에도 여전히 자신들의 모습을 비춰주고 진단해 줍니다.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말을 건네며 길을 보여주는 현재 사건인 거지요. 광야에 비추어 호세아는 이스라엘을 향해 남편을 저버린 여인이라 했고,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거듭된 불순종에도 한결같이 공의를 베푸신 하나님을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이 길을 잃을 때마다 지혜로운 이들은 출애굽으로 돌아 가 오늘의 길을 찾아낸 거지요.

    시편 105편은 출애굽이라는 거울이 비춰준 또 다른 모습입니다. 시인의 눈에 비친 출애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을 기억하고 요셉을 먼저 보내어 준비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성조(聖祖)부터 출애굽을 약속하고 준비하셨습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성조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위한 여정의 일부입니다. 시급한 현안 앞에 쉽게 눈이 가려지는 우리에게 시인은 하나님이 분인지 일러주고 있습니다. 그는 출애굽 이야기를 통해 우리 생각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서는 하나님과 그분의 계획에 대해 들려줍니다. 당신의 약속에 한없이 신실하신 하나님, 구원의 약속을 이루고자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세밀하게 이끌어가는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 말입니다.

    시편 105편의 시인은 오늘 우리에게 십자가 사건을 어떻게 묵상하고 새겨야 할지를 일러주는 듯합니다. 2천 년 전 예수께서 짊어진 십자가는 오늘 여기에서 새롭게 다가오고, 미처 보지 못했던 눈을 뜨게 해주는 '하나님의 힘'입니다. 십자가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영원에로 이끄는 지금 여기의 사건이며 믿는 이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을 발견케 하는 신앙의 화수분인 거지요. 이스라엘이 출애굽과 광야로 돌아가길 요청받듯 사순의 여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우리 자신을 추어 보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기도>

주님, 제게 이미 영원한 생명의 화수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쳐 주셨는데 그걸 잊고 엉뚱한 걸 붙잡으려고 헤매는 것은 아닌지요? 요셉의 삶에서 출애굽을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발견한 시인처럼, 저희도 이 사순의 여정에 십자가의 신 능력을 새롭게 발견하며 풍성해지도록 은총을 허락해 주십시오. 아멘.

 

『사순절묵상집_곁에 머물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