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나눔
[사순절 묵상] 2024년 3월 4일 월요일
사순 14. 3월 4일 월요일
<가져갈 수 있는 것>
오늘의 말씀_고린도전서 3:10-2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고린도전서 3:13
믿음이 무엇인지 되새기게 해준 분이 기억납니다. 그는 자신을 찾아온 이를 환대하며 내어주기를 기꺼워했습니다. 부유하지도 학력이 높지도 않았지만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습니다. 듣기를 더 즐겨했고 상대의 필요를 눈여겨 보다가 슬며시 채워주었습니다. 몇 차례의 만남 후 어떻게 그런 믿음을 지녔는지 물었습니다. "뭔가를 할 때 한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해요. 내가 지금 행하는 것이 죽을 때 하나님께서 받아들여 주실 만한 것일까? 를 묻곤 해요" 그분은 제게 '지금 하는 것이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자신의 신앙 기준을 들려주었습니다. 가져갈 수 없는 것이라면 움켜잡으려 애쓰지 말 것이며 가져갈 수 있는 것이라면 그저 감사하며 감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는 각자가 행한 일이 불에 의해 드러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개역성경은 이를 공적(功績)이라 했는데 눈여겨 볼 업적이라기보다는 살아온 삶과 삶에서 행한 작고 큰 모든 일입니다. 불에 타서 없어질 것은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고, 하나님께서 기쁘게 여기는 것은 정련되어 아름답게 남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두려운 심판이지만 누군가에겐 더없는 감격의 과정입니다. 믿음으로 행하며 사랑으로 감당한 것, 세월이 지나 기억조차 없는 작은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며 인정해 주신다면 이보다 복되고 감사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본문의 말씀은 심판의 경고가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행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드려도 좋을 만한 것인지를 살펴보라는 권고이며 쓸데없는 것은 놓아버리라는 지혜입니다.
사도는 고린도 교우들이 자신들의 신앙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내세우는 것을 안타까워합니다. 바울이니 아볼로니 베드로니 하는 것들은 다 물에 타서 없어질 껍데기요, 포장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 때에야 우리 선생님이 최고지요. 스승이 어떤 분인지, 그 분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를 내세우고 싶어 합니다. 성숙해지면 배운 바가 삶에 어떻게 녹아졌는지에 마음을 쏟습니다. 가르쳐준 말씀이 이 몸을 통해 어떤 열매가 되고 향내가 되었는지가 소중합니다.
사도는 이를 마지막에 남는 것, 불을 통과하여 정련된 것이라 일러 줍니다. 그리스도에 터한 것, 뿌리내린 것만이 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의 이름으로, 그분의 사랑과 자비에 의지해서 행한 것만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행한 것, 주님의 이름을 내걸면서도 자기 영광을 슬쩍 끼워 넣은 것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옳습니다. 예수님께 집중하고 깊이 만날수록 다른 것을 덧붙일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되지요. 굳이 나의 행동과 이유를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도 않습니다. 예수님만으로 충분하기에, 자신이야말로 사라져야 할 것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은 영광 받아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겠다는 세례 요한의 고백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레 이 몸과 삶이 하나님께서 머물고자 하는 성 전임을 알게 되지요. 성전은 '사람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지는 곳이니 성전이 된 이가 힘쓸 것은 자명합니다. 오늘 하루 살아가는 중에 생각과 말과 행실이 '죽을 때 하나님 앞에 가져갈 수 있는 것인 가?' 살피십시오.
<기도>
주님,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중에 제 생각과 말과 행실이 주님 앞에 가져갈 만한 것인지를 살피는 시간을 자주 갖게 해주십시오. 저를 차지하고, 저를 주님의 전으로 바꾸고자 하심이 사랑임을 압니다. 감히 저를 주장하며, 내 것이라고 우기는 짓은 덜하게 해주십시오. 하루가 저물녘이면 저에게서 주께로 넘어간 것들로 감사하는 밤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도우소서. 아멘.
『사순절묵상집_곁에 머물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