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나눔
[사순절 묵상] 2024년 3월 6일 수요일
사순 16. 3월 6일 수요일
<거래와 비거래>
오늘의 말씀_마가복음 11:15-19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마가복음 11:17
마가복음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해 '먼저' 성전을 깨끗하게 했다고 기록합니다. 성전 정화의 이 짧은 본문에는 예수님의 분노가 담 겨있습니다. 나귀를 타고 겸허히 입성했지만 성전에서 거침없이 행합니다. 언어도 과격합니다. '너희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는 선언은 듣는 이들을 견딜 수 없게 만듭니다.
종교 지도자들도 할 말이 많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오는 순례자를 위해 성전세를 낼 수 있도록 편리하게 환전해 주는 것, 흠 없는 짐승을 준비해 희생제물을 바르게 드리도록 하는 것은 순례자를 돕는 일이기 도합니다. 그로 인해서 이익이 발생하기야 하겠지만 어떤 일이든 그 수고의 댓가를 취하는 것이 몹쓸 짓은 아닌 거지요. 그런데 이를 강도짓이라 규정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하니 견딜 수 없습니다. 좀 점잖게 지도자들을 찾아가 이러이러한 것은 옳지 않으니 바뀌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더라면 평화롭게 변화를 끌어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본문에서 예수님은 어떠한 여지도 남기지 않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가려는 세력의 결심은 더 굳어졌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집이 무엇인지를 일러주십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불릴 것이라' 성전은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곳이고, 아버지께 기도하는 집입니다. 기도하는 이는 하나님께서 듣고 응답하심을 믿습니다. '기도하는 이'와 '듣는 분' 사이에는 가난한 마음과 무상의 은혜만이 오고 갑니다. 은혜로 채워지기에 감사와 찬미가 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며 은혜와 긍휼의 비거래의 장소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지도자들이 거룩한 은혜, 무상(無償)의 장소를 물건과 돈을 주고받는 거래와 흥정의 장소로 바꾸었습니다. 은혜의 터전을 장사치가 판치는 거래소로 바꾸었고 긍휼과 은혜의 하나님을 거래하는 하나님으로 둔갑시켰습니다. 주님의 집이 '기도의 집'이요, 누구든지 나아와 '은혜를 구하는 집'이라면 이곳에서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행위가 '거래'입니다. 거래는 자격과 능력, 가치를 따지며 교환되기에 은혜가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세상이 가장 발달시킨 행위가 거래입니다. 거래가 아닌 것을 세상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거래에 참여할 능력이 없는 인생은 그들의 리그에서 퇴출당하고, 울타리 밖으로 내몰립니다.
주님은 기도의 집, 하나님의 은혜가 채워지는 집을 거래와 계산의 흥정터로 바꾼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거래는 은혜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며, 거래로는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체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강도의 소굴처럼 되어버린 성전으로 인해 견딜 수 없으셨습니다. 지켜야 할 것은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가장 먼 것으로 채워진 성전에, 화를 내고 채찍질을 해서라도 회복하고 싶으셨던 거지요.
이 세상은 거래로 유지되는 곳입니다. 예수께서도 이 거래를 제안 받기도 했습니다. '당신이 내게 절을 한다면 이 세상을 주겠노라' 이것이 사탄의 유혹이자 거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거래를 물리치고, 비거래적인 사랑과 은혜로 당신의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앞둔 주님은 이 길이 거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뤄지는 것임을 분명히 하십니다.
사순의 시간은 우리 신앙의 근원을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거래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인생이지만 근원을 잃어서는 곤란합니다. 거래로 가득한 세상에 거저 누리는 은혜를 흐르게 할 것인지, 세상의 거래를 주님의 집에까지 끌어들이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기도>
주님, 주님의 은혜를 거저 받음으로 믿음의 여정을 시작하고는 어느새 거래에 익숙 지고 신앙생활마저 잇속으로 행하는 우리를 발견합니다. 은혜의 집을 거래의 장소 바꾼 것이 저들만이 아님을 고백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다시금 믿음의 근본을 새기며 거래의 세상에서 비거래적인 은혜를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아멘.
『사순절묵상집_곁에 머물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