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나눔
[사순절 묵상] 2024년 3월 25일 월요일
사순 29. 3월 25일 월요일
<사랑의 흔적>
오늘의 말씀_요한복음 12:1-11
마라이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요한복음 12:3
예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후 유대 지도자들은 위기를 절감하고 논의한 결과,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민족 전체가 망하지 않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유익하다’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말로 결론짓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을 공리(公利)로 몰아 모두가 안녕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신앙과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지도자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 또한 고심했던 것 같습니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인이 나서 감사와 사랑에 응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베풀어 주 신 놀라운 은혜를 체험한 그녀로서는, 사회가 정한 예의와 격식만으로 응대하는 것은 도무지 만족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자신만의 ‘감사의 길’을 마련해 주님 앞에 섰습니다. 나드 향을 그분 발에 붓고, 엎드려 자신의 머리칼로 닦아드렸습니다. 나드향유 는 히말라야에서 나는 식물에서 뽑아내는 기름이라 구하기도 어렵고 향이 워낙 강해 밀봉해야만 합니다. 밀봉한 뚜껑을 열면 잔치에 참석한 사람이 다 멈추고 향의 근원을 찾게 되지요.
마리아의 행동은 과감할 뿐만 아니라 논란의 여지도 넘쳐납니다. 유대에서 손님의 발을 닦는 것은 종이 할 일입니다. 귀한 손님이 오면 그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것이 극진한 환대였습니다. 마리아가 향유를 주님의 발에 붓고 그녀의 머리칼로 닦은 것은 환대를 넘어서는 파격이며, 학자들의 표현처럼 마리아가 일으킨 혁명입니다. 유대인의 관습에 따르면 여인이 사용하는 향유는 결혼할 때 남편의 머리에 바르고, 후에는 장례에 씁니다. 사람들이 수군 일이지만 마리아에겐 가장 귀한 것으로 가장 소중한 분에게 사랑과 감사를 표하는 아름다운 길이었습니다. 그녀는 격식, 관습, 사람들의 시선에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베푸신 사랑에 이끌렸고 그 사랑에 감사를 드린 것뿐입니다. 주님도 기꺼이 그 사랑을 받으셨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공리(公利)의 길로 자신들을 합리화하지만, 마리아는 은혜에 응답하고픈 간절만 마음으로 사랑의 길을 마련했습니다. 주님은 죽음의 올가미를 만든 저들의 음모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중이지만 마리아의 사랑의 응답을 기꺼이 받습니다. 이 모든 것을 마지막 여정의 일부로 소중히 여겨주십니다. 사랑의 길은 제 유익을 잃을까 염려하며 희생양을 만들고 이를 합리화하는 무리들과 점점 멀어집니다.
하나님의 가없는 사랑에 젖어 온몸과 마음으로 응답하여 자신을 내어 드리는 감격을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영원한 흔적으로 받아주십니다.
유다의 판단에 의하면 마리아의 행위는 낭비입니다. 그에겐 쓸데없는 짓이건만 주님은 마리아의 행위를 영원한 구원의 길, 십자가 사건 의 한 부분으로 제정해 주십니다. 십자가의 길이 윤리의 길이 아니라 '사랑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온전히 내어주는 희생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물질적 이익을 비교하는 공리(公利)와는 더더욱 아무 상관없는 길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버림받는 길이며, 사랑으로 희생 하는 길입니다. 마리아는 그 온전한 사랑의 길에 응답한 거지요. 믿음의 행위는 사랑의 응답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믿음에 사랑의 응답이 없으면 신앙은 메마르고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다는 다툼만 남습니다. 사랑 에는 다툼이 있을 수 없고 서로에게 자기를 내어줄 뿐입니다.
<기도>
주님, 마리아가 찾아낸 사랑의 길을 기꺼이 받으셔서 영원한 생명의 일부로 삼아주셨음을 기억합니다. 홀로 걷던 십자가의 길에서 마리아가 사랑의 응답을 드린 것처럼 이 여정에서 저 또한 주님께 사랑의 감격을 드리고 싶습니다. 혹여 공리와 이익을 생각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게 하십시오, 아멘.
『사순절묵상집_곁에 머물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