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나눔
[사순절 묵상] 2024년 3월 29일 성금요일
사순 33. 3월 29일 성금요일
<십자가, 거절과 구원>
오늘의 말씀_시편 22편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시편 22:1
겟세마네에서 잡힌 주님은 이리저리 끌려 다닙니다. 대사제의 관저에서 모욕을 당하고 로마 총독부에서 병사들로부터 폭력을 당합니다. 모욕과 고통을 오롯이 홀로 겪은 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아무도 그분 곁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무력한 여인들만 눈물로 그분 가까이 머물고 있습니다. 주님을 둘러싼 모든 것이 그분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세상에서 철저하게 모욕당하고 거절당하여 홀로 남겨지는 길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달린 주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라고 절규합니다. 주님은 시편 22편 1절 말씀으로 하나님을 찾습니다. 성서시대 유대인은 첫 구절을 인용하여 그 단락 전체 의미를 이끌어냈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시편 22편은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드리는 기도요, 간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탄식하며 부르겠지만 하나님은 너무 멀리 계십니다. 하나님 손길을 누렸던 구원의 체험도 지난 일입니다. 그의 위기와 고난은 하나님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금 여기 고난의 자리에 하나님께서 부재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무 멀리 있고 그는 무력합니다. 온통 원수들에 둘러 싸여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두의 손가락질에 짓눌려 무너지고 있습니다. 저들의 폭력은 야수와 같아 몸은 찢겨지고 뼈마디는 부서집니다. 옷마저 벗기고 나눠 가지며 ‘하나님이 건져주나 보자’고 비웃기까지 합니다. 저들은 철저한 승리자요. 그는 패배자이며 죽어가는 자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응답은 없지만 그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믿음을 버리지 않습니다. 자기 목숨을 조롱하는 이들을 저주하거나 벌하라고 청하지 않고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그는 죽음의 바로 옆자리, 모든 것이 끝나가는 순간에 있지만 생명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만 바랍니다.
시편 시인과 같이 예수님의 고난은 인간 비극의 정점에 닿아있습니다. 이 땅에서 거절되어 땅에서조차 밀려나 십자가에 달려 있는데 언제나 친밀한 사랑 가운데 연합되었던 하나님마저 침묵하고 부재중입니다. 하늘과 땅, 그 어디에도 거할 자리가 없는 곳이 십자가 위입니다. 그럼에 도 주님은 기도 가운데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고 있습니다. 하늘 아버지는 부재중이나 아버지의 뜻까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늘과 땅 그 모두에서 거절당해도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버리지 않습니다. 인간의 연약한 육신에 남은 고난을 오롯이 채움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실 때 구유에 누우실 만큼 겸손히 오셔서 아무도 그분보다 더 겸손해질 수 없게 했듯이, 주님은 십자가 고난 중에도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며 그분의 뜻을 온전히 이 룸으로 누구도 고난으로 절망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버림받는 이의 정점에 계셔서 버림받는 이들의 구주가 되시는 거지요. 끝내 주님은 거절의 상징인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심으로 고난과 하나님 부재의 정점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신비를 드러내셨습니다.
이로써 십자가는 우리 믿음의 상징이 되고 고난 가운데서도 소망이 되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2천 년 전의 과거가 아니라 믿는 이에게 지금 발휘되는 영혼의 능력이 되었습니다. 그분이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모든 아픔과 고난을 품으셨기에 믿는 이는 이제 더 이상 홀로 남겨질 수 없습니다. 그분이 우리보다 먼저 아픔을 겪고 고난을 받으셔서 우리를 치유하시고 구원을 누리게 하십니다.
<기도>
십자가에 달린 채 드리신 주님의 간구를 기억합니다.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어찌 하여 저를 버리십니까라는 외침과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 십자가에 위에서 이루어졌음을 기억하게 하십시오. 거절과 모욕, 고난의 십자가를 담당하셔서 저희에게 참된 생명을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이 하루 주님의 십자가 아래 머물길 원합니다. 아멘.
『사순절묵상집_곁에 머물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