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나눔
[사순절 묵상_십자가의 길] 2025년 3월 21일 금요일

사순 13일
3월 21일 금요일
<말미로 얻은 지금>
오늘의 말씀_누가복음 13:1-9
"잘 들어라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눅 13:3)
누군가가 겪는 일을 두고, 또 일어난 어떤 사건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을 즐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쑥덕거림은 자연스레 사람을 향하고 허물과 잘못을 꼬집는 비난으로 이어집니다. 고약한 버릇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부친은 벗들과 어울리다가도 누군가를 평하거나 비난하는 이야기가 시작되면 취한 척하며 그냥 자리에 누웠다고 합니다. 잠든 것으로 타인을 평하는 자리에서 입을 다문 것입니다. 다산 선생이 기록으로 남긴 것을 보면 부친이 자식을 위해 일러 준 것이기도 하겠지요.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와서는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이러네 저러네 하고 있습니다. 망대가 무너져 죽고, 갈릴리 사람들이 피흘린 것은 분명 그들에게 죄가 있으니 그럴 것이라고 수군댑니다. 예수님은 남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으로 자기 의를 드러내려는 이들에게 그들의 죄 때문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며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처럼 망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남을 향한 눈매를 자신을 향하게 하는 거지요. 십 수 년 전 동남아에서 쓰나미로 수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이를 두고 예 수를 믿지 않아서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신앙을 빌어 할 소리는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돌아볼 것을 요청하십니다.
그러면서 들려주신 무화과 나무의 비유는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여겨야 하는지를 분명히 일러주고 있습니다. 중동지역에서 포도나무는 정성스레 가꾸어야 할 과수이기에 포도원에 심어 관리하지만 무화과나무는 그렇게 돌볼 만한 나무가 아닙니다. 보통 길거리에 심겨져 있고 성장속도가 빨라 3년이면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 무화과나무를 포도원에 심고 돌보았으니 넘치는 배려와 정성을 기울인 겁니다. 그런데 아무 열매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베어버리고자 할 때 포도원지기는 한 해의 말미를 구하며 더 열심히 돌보겠노라고 청을 드립니다.
듣는 이들에게 아주 불편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 평범하고 작은 것에까지 정성을 기울이는 은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유예를 주시는 은총입니다.
남을 함부로 평하고 판단하지 않는 만큼 선한 열매가 맺히는 것은 아닐까요? 남을 판단하는 데 힘을 쏟기보다 자길 돌아보게 되면 자연스레 헛된 가지들을 잘라내게 되고 선한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이것이 유예받은 이가 새겨야 할 마음입니다. 비유에 따르자면 지금 우리의 현재는 선하신 중보자가 마련해 주신 말미입니다. 제가 잘나서 지금 여기가 있는 줄 아는 것은 큰 착각에 속합니다.
사순의 시간은 말미를 선용하는 시간입니다. 중보자의 청으로 마련된 이 시간을 감사하며 아끼는 지혜를 가져야지요. 이러쿵저러쿵 수군대다 자신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침묵하는 가운데 소란한 세상의 평가와 판단에 빠지지 않고 저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이는 복됩니다.
<기도>
주님 제게 주어진 이 시간이 주님의 은총으로 마련된 말미임을 명심하게 하십 시오. 남을 판단하는 자리에서 침묵할 지혜와 용기를 주시고 저 자신을 향하게 하셔서 저를 보시며 기뻐하시는 주심을 저도 바라보게 해주십시오. 아멘.
『십자가의 여정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