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나눔


[사순절 묵상] 2024년 2월 23일 금요일

사순 8. 2월 23일 금요일

<정체성>

오늘의 말씀_로마서 4:1-12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롬 4:3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했고 그의 후손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았습니다. 이집트를 꺾고 노예 백성을 구원한 것도,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한 것도 모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었던 약속을 기억한 결과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게 된 것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할 근거도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모든 것 의 출발점이 아브라함이니 다른 것은 다 부정해도 그의 자손이라는 정 체성만은 결코 버릴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정체성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근본정신은 흐릿해지고 외형만 남기도 합니다. 성전의 근본정신 '기도하는 집'은 흐릿해지고 장사꾼의 목소리가 높아도 하나님의 집이라는 표어는 여전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여 당신 백성으로 삼은 뜻을 잊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의 자손 즉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한 것 은 그의 믿음을 보고 의롭다고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기 때문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시작된 은총의 관계를,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니 당연히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주장합니다. 착각입니다.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수 있다'고 한 세례 요한의 말은 그들의 착각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지녀야 진정한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이지요.

    믿음은 자신에 대한 불신(不信), 자신은 믿을만한 인생이 되지 못하며 오류와 허물을 지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는 고백이 바탕을 이룹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 의지해야만 하고 그분께 자신을 맡기는 투신(投身)의 의미가 오롯이 담겨있습니다. 믿음이란 자기 부인과 투신이 합쳐져 순종으로 이어집니다. 순종이란 나는 없어지고 말씀하시고 이끄는 하나님으로 채워지는 여정입니다. 나의 걸음에 하나님의 이끄심과 은총의 흔적이 가득해지는 거지요.

    하나님은 당신 품에 뛰어든 인생을 기꺼이 맞아 받아들입니다. 인정하고 이끌어 주십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여정에 참여한 아브라함 은 믿음의 본을 보임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만약 아브라함의 핏줄만을 강조하며 정체성 삼고 자랑한다면 이것은 믿음과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백성이라면서 자신의 선택됨만을 강조하고, 선민의식으로만 채워진다면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습니다.

    바탕을 잊어 생겨난 공허함을 채우려 할수록 외양과 형식에 매달리게 됩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할례로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확증하고 믿음의 표상인 양 강조하는 것이 믿음의 근본을 잃은 결과라고 지적합니다.

    근본에서 멀어질수록 형식은 강조되지요. 하나님과 함께 시작된 이 믿음의 여정에서 어느새 은총을 잊고는 자신이 능히 그런 믿음의 소유자인 양 착각합니다. 주님을 위해 수고하면서 다른 이의 부족함을 힐난하는 어리석음에도 빠집니다. 선민의식이 이방인을 멸시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믿음의 여정은 깨어 있는 여정입니다. 점점 자신은 작아지고 은총의 주님만이 커지는 길입니다. 오죽하면 그 은혜가 놀라워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라며 찬양하겠습니까?

 

<기도>

주님, 주께서 저를 믿음의 자녀로 불러주셨습니다. 그때의 첫 고백, 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인생이며 주님이 저를 이끌어주셔야만 한다고 엎드렸던 것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자주 잊어버리고 선물로 주신 믿음이 내 믿음, 내 자격이라 여기지는 않는 지 두렵습니다. 주님의 자리에 엉뚱한 것을 채우지 않게 하십시오. 밝은 눈, 맑은 마음을 주십시오. 아멘.

 

『사순절묵상집_곁에 머물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