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나눔


[사순절 묵상] 2024년 2월 27일 화요일

사순 10. 2월 27일 화요일

<믿음>

오늘의 말씀_히브리서 11:1-3, 13-19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브리서 11:1-2

 

    복음서에 예수께서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이 물음에 "예, 제게 주님을 향한 믿음이 있습니다."라고 응답하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 고백하는 이에게 어찌 믿음이 없을까마는, 이 물음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믿음이란 무엇인가? 되새기게 합니다. 과연 주님이 원하는 믿음은 무엇일까요?

    히브리서는 믿음을 명쾌하게 정의합니다. 믿음이란 우리에게 보이 지 않으나 바라고 기대하는 것이 참된 실재임을 확신하는 것이라고. 지 금 우리 눈앞에서 힘을 발휘하며 삶을 휘두르는 것이 때가 되면 안개처럼 사라질 것이라 믿는 거지요. 보이는 것은 그림자요 가짜이며, 보이지 않는 것이 진짜요 하나님의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믿음은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로 이끌어가는 힘이며 능력입니다.

    믿음은 그럴 것이라는 추측이나 짐작이 아닙니다. 생각은 힘을 낳지 못하고 삶을 이끌 능력이 없습니다. 조금 나은 논리를 담은 반대편 주장에 부딪히면 맥없이 무너집니다. 믿음은 세상에서 힘을 발휘하는 체계나 가치관에 대해 "아니오! 그것은 피조된 것에 지나지 않고 곧 마른 풀처럼 시들고 말 것이라"고 선언하며 거스르는 힘입니다.

    믿음은 든든한 소망을 낳습니다. 소망은 이뤄지면 좋고 안 이뤄져도 할 수 없다는 희미한 기대가 아닙니다. 이런 기대는 세상을 견딜 힘을 주지 못합니다. 약속의 말씀이 온전히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고 확신 하는 것이 '소망'입니다. 소망과 믿음은 도무지 나뉠 수가 없습니다.

    이 믿음은 믿음을 품고 살아간 이들로 인해 증거됩니다. 믿음은 삶으로 증명할 수 있을 뿐이지 논리로 설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사도는 아브라함을 예로 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든든한 배경이 되는 고향, 언제나 기댈 수 있는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생면부지의 곳으로 나아갔습니다. 보이는 고향과 친척의 힘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실재로 믿고 수십여 년의 나그네 길을 걸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열매인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 때조차 그 아들을 바치려 했습니다. 이삭이야말로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이었지 만 그것은 이미 이루어진 약속이며 현실입니다. 다시 주어진 말씀의 깊은 속뜻을 도무지 헤아릴 수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뤄준 약속의 아들도 내어드리면서까지 믿음을 품었습니다. 장성한 눈앞의 아들 이삭에 비해 믿음은 참으로 희미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믿습니다. 아브라함은 지난 시간, 약속의 열매로 주어진 결실에 안주하지 않고 담대하게 믿음의 새로운 여정에 들어섰습니다. 믿음은 과거, 이미 지난 시간에 체험한 은혜에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를 이끄는 하나님을 만나고 새롭게 하는 은혜에 젖어 들게 합니다.

    히브리서는 한때 박해를 견뎌냈고, 환난을 이겨낸 체험도 있고, 선행과 사랑의 봉사를 감당한 적이 있는 이들에게 전해지는 메시지입니다. 어느새 뜨겁던 열정도 식어져 모임도 흐지부지, 믿음도 소망도 그저 그런 맥없게 된 성도를 위해 말입니다. 믿음과 소망, 이 낱말에 여전히 가슴이 뛰고 있는지요?

 

<기도>

주님, 믿는다고 하면서도 어느새 눈앞에 보이는 것에 취하고 사로잡혀 약속의 말씀을 희미하게 여기며 잊고 지냈음을 고백합니다. 사순의 여정 동안 진짜와 가짜를 잘 분별하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길과 일치할 수 있도록 저를 다듬어 주시고 일깨워 주십시오. 혹여 제가 권태에 빠져 가짜를 붙잡고도 진짜라고 여긴다면 정신 차릴 수 있도록 야단쳐 주십시오. 아멘.

 

『사순절묵상집_곁에 머물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