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나눔


[사순절 묵상] 2024년 3월 26일 화요일

사순 30. 3월 26일 화요일

<십자가>

오늘의 말씀_고린도전서 1:18-31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린도전서 1:18

 

    고린도는 아테네에서 60여 km 떨어진 항구도시입니다. 에게해로 향하는 겐크레아와 아드리아해로 나가는 레기움 두 항구를 거느린 지중 해 연안의 해상교역의 중심지입니다. 두 바다를 접한 도시인지라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는 각 민족의 신들이 집결한 우상의 도시이기도 했고, 1천 여 명의 여사제(창녀)를 거느린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신전이 있을 만큼 음란한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온갖 우상과 사상이 유입되고 뒤섞여 생존을 위한 지혜의 각축을 벌였고, 신적 능력이 겨뤄지던 곳입니다.

    다들 자신들이 섬기는 신의 능력을 치켜세우고 지혜를 자랑하는 곳 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전할 것을 다짐합니다. 유대인에게 본래 십자가는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의 상징이었고, 로마 치하의 사람에게는 범죄자의 처형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형편이 이러다보니 신적 능력과 지혜를 추구하는 이들이 보기에 십자가는 어리석고, 무력할 뿐만 아니라 불편하고 아주 거리끼는 것이기도 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에 사로잡힌 바울은 저들이 추구하는 지혜와 신적 능력이 도리어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저들은 똑똑한 것 같으나 사실은 자신들의 주장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입니다. 유대인이 표적을 구하는 것은 말씀의 신빙성을 보증할 기적과 같은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래야 믿겠다는 것입니다. 헬라인이 지혜를 구하는 것 은 자신들의 지성과 사유를 만족시켜 보라는 요구입니다. 그러면 따르겠다는 거지요. 표적과 지혜는 저들의 믿음을 일으킬 필요조건인 동시에 그 조건을 채운다면 믿을 수 있겠다는 신을 평가하는 조건이기도 합니다. 마치 여러 신을 둘러보며 믿을만한 신을 뽑겠다는 면접관과 같습니다. 신을 선택하다니요!

    과거의 바울에게도 십자가는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분을 하나님으로 고백하다니, 어리석음 그 자체라 여겼습니다. 해괴한 주장이고 하나님을 능멸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 사로잡힌 후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 그리스도이심이 분명해졌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믿어진 것입니다. 자신 또한 하나님께 택함을 입어 일꾼으로 세워졌음도 깨달았습니다. 그가 그리스도를 택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그를 택하셨습니다. 믿어지는 사건이 있고서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생겨난 믿음의 눈으로 보니 더 분명해졌습니다.

    지혜와 능력이라는 조건을 채우려는 이들은 스스로 갈려 넘어지는 중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으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시험하는 거지요. 그러니 십자가야말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지혜요,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구원의 '완전한 도구'였습니다. 저들에게 십자가는 걸림돌에 지나지 않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우들에게 믿음으로 부름 받은 것이 어떤 연유였는지 살펴보라고 권면합니다. 지혜를 구하고 이적을 구하는 중에 믿음을 택하였는지 아니면 부족하고 내세울 것이 없음에도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구원자요 하나님의 아들임이 믿어지는, 믿음을 선물로 받았는지 분별하라는 거지요. 믿음이 곧 선물이니, 나를 자랑하거나 이 믿음을 뽐낼 일이 어디 있을까요? 내가 십자가를 택한 게 아니고 십자가가 나를 택했으니 은혜일 뿐이지요. 은혜를 받았으니 어리석고 멸시받는 자리에 서는 것조차 부끄럽지 않습니다. 십자가야말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이는 누구나 이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도>

예수님, 혹 제가 신앙생활의 연륜으로 십자가를 안다고 착각하지 않게 하십시오. 주님의 십자가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은혜로만 살아가길 원합니다. 믿어져서 믿음이 생긴 그 은혜, 아무것도 아닌 인생을 택하셔서 구원에 이르게 하신 은혜를 기억 하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지혜와 능력을 내세우는 세상에서 십자가를 자랑하고 사랑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게 하십시오. 아멘.

 

『사순절묵상집_곁에 머물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