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나눔


[사순절 묵상] 2024년 3월 28일 목요일

사순 32. 3월 28일 목요일

<대야사역>

오늘의 말씀_요한복음 13:1-17

내가 주와 도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요한복음 13:14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동행의 시간은 끝나갑니다. 제자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식사가 끝나면 각자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까지도 그러하였거니와 이 여정의 막바지에서 당신의 아들을 온전히 신뢰하며 모든 것을 위임했습니다. 아들 또한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오롯이 합하고자 제자들에게 마지막 나눔을 택합니다.

    식사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 예수께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 앞에 놓고 무릎을 꿇습니다. 스승의 손이 제자의 발을 잡아 물에 담그고 닦습니다. 주께서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대야에 물을 담아 오셨지만 그것이 자신들의 발을 씻어주려는 것임을 아무도 생각할 수 없었기에 이어지는 선생님의 행동 에 제자들은 당황한 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가룟 유다 조차도 말입니다.

    발을 씻기는 물소리 말고는 정적이 가득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행함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 주님을 따르며 그분의 말씀과 기적을 많이 듣고 보았지만 지금 이 자리는 그들이 알고 있는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완전히 역전되었습니다. 그 무게를 견딜 수 없는 베드로가 침묵을 깨뜨립니다. "주님 이럴 수는 없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와 나는 상관이 없다."라고 선언합니다. 이 말씀은 너의 발을 씻어주지 않으면 너와 나눌 몫이 없으니 생명을 얻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 얼마나 당황스러운 선언인지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며 헌신한 제자입니다. 그렇다면 그동안의 수고와 동행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일까요? 주님은 발을 씻겨주며 분명하게 일러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이 사랑의 섬김, 이걸 너희가 받아야 하고 그래야 생명에 참여 할 수 있다는 거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뭔가를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게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임으로 구원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발을 씻겨 주는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감히 감당할 수 없는 그 사랑에 무너지는 게 구원이라고 일러주십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하늘의 뜻과 온전히 하나 되어 행한 구원의 길입니다. 게다가 그 사랑은 무차별입니다. 배반할 이도, 부인할 이도, 뿔 이 흩어져 숨어버릴 이들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도 그 사랑 한가운데로 뛰어듭니다.

    주님은 그렇게 사랑에 속수무책으로 점령당한 제자들에게 일러 주십니다. '너희는 나를 선생님이라 주님이라 부르지 않느냐? 옳다. 그런 주이자 선생인 내가 종이자 제자인 너희를 씻어주었으니 너희도 서 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도널드 크레이빌이라는 신학자는 기독교의 상징은 대야와 십자가와 빈 무덤인데 예수님의 사역을 더 잘 설명하는 것은 대야이며 십자가만큼의 상징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한없이 낮아져 섬기는 대야의 사역으로 제국의 폭력의 도구인 십자가가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주께서 명하신 사역은 서로 발을 씻어주는 대야 사역이라는 거지요.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이 대야 사역으로 정점을 이루었고 기독교 신앙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전에 먼저 주님의 사랑에 사로잡힌 사람임을 새기는 것입니다. 그분의 제자란 스승으로부터 끝없는 섬김을 받았다는 뜻이지요. 그러니 제자 된 이가 해야 할 것 이 무엇인지는 자명한 일입니다.

 

<기도>

주님, 제 발을 먼저 씻어주시고 제 죄를 먼저 감싸주셨음을 잊지 않게 하십시오. 제가 뭐라도 된 양 사랑하고 용서한다는 어리석은 마음을 품지 않도록 일깨워 주십시오. 제가 뭐라도 할 수 있는 것은 주님께 받은 사랑이 낳은 것이며, 뭐라도 하지 않는 것은 제 무지임을 기억하겠습니다. 아울러 십자가의 주님을 묵상할 때마다 대야를 든 주 님, 수건을 허리에 동이신 분임을 기억하게 하십시오. 아멘.

 

『사순절묵상집_곁에 머물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