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컬럼


함께 걷는 봄 길 편지(4)

[던져진 성경책]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어서, 어떤 양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냅니다.(히브리서 4:12)

ㅎ.jpg

 

1876년이니 지금으로부터 140여 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만주 봉천 근처 국경지역에서 스코틀랜드에서 온 선교사 <로스>가 조선에서 온 장사꾼들을 대상으로 전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만만디’ 중국인들과는 달리 세 시간 넘게 계속된 설교에서 자리를 뜨지 않고 기다리는 조선인들을 보고 이들은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설교가 끝나자 우르르 로스에게 몰려오는데 그들의 입에서 개종 결심이 나올 것을 기대했지만 그들은 선교사가 입은 옷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이 옷감은 어디가야 구할 수 있습니까?”

로스 선교사는 실망이 컸습니다. 그 이후에도 몇 차례 조선 상인들을 만났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지요. 그래서 그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조선 상인들의 호기심을 끌만한 물건을 하나 주면서 성경과 전도지를 함께 나눠주는 것이지요. 당시 조선인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양초였습니다. 조선 사람은 양초만 받고 싶었지만 성경도 같이 가져가야 한다는 조건에 마지못해 성경을 들고 오게 됩니다. 그래도 당시 사람들이 참 착하지요? 지금 같으면 도중에 버렸을 터인데 사람들은 모두 성경을 소지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 사람들 중의 한명이 의주사람 <백씨>가 있었습니다. 그 역시 양초에만 관심이 있었지요. 함께 받아온 한문 성경은 요즘 들어 부쩍 ‘종교’에 관심이 많아진 아들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아들은 그 낯선 책을 열심히 읽다가 친구 몇과 함께 성경을 비롯해 기독교에 관한 책을 구해 연구하기 시작하지요. 그렇게 3년이 흘렀고 백씨 아들과 친구들은 성경책에 담긴 진리를 받아들이기로 작정을 합니다.

그들은 압록강을 건너 봉천으로 그 선교사를 찾아 갑니다. 마침 로스선교사는 안식년을 얻어 본국으로 돌아갔고 대신 그의 매제 <메킨타이어>가 그들을 맞이합니다. 조선에서 온 낯선 청년들은 세례를 요청을 했고 메킨타이어는 4개월 동안 그들을 데리고 있으면서 여러 가지 신앙훈련을 시키게 됩니다. 예수를 믿으면 가족까지 희생당할 수 있다는 말에도 그들은 결심을 굽히지 않았고 메킨타이어는 더 이상 세례를 미룰 수 없어 세례를 베풀게 됩니다. 한국 교회사에서 ‘한국 개신교회의 첫 열매’ 인 <백홍준의 세례>가 이루어집니다. 이때가 1879년 그러니까 한국에 개신교 선교사가 인천에 들어오기 5년 전의 일입니다.

백홍준은 일자리를 주겠다는 선교사의 제안을 뿌리치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조선말을 하는 그리스도인 백홍준을 자기 옆에 두고 여러 일을 함께 하길 원했지만 그는 “세례를 받았으니 고향으로 가는 것은 당연하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고향 의주에 돌아와 친구들을 불러 모으고 그동안 더 확실해진 기독교 진리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그는 기독교를 전하였다는 이유로 3년간 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의주의 <신앙공동체>는 더욱 단단히 조직되어 갔습니다.

이 의주 신앙공동체를 통해 한국 기독교의 초석을 놓는 많은 인물들이 배출됩니다. 언더우드선교사를 도와 새문안교회를 창설한 서상륜, 아펜젤러를 도와 정동감리교회, 의주읍감리교회를 세운 최성균 등등이 그들입니다.

아무런 가치 없이 여겨져 ‘던져진 성경책’ 그러나 그 성경책이 한국기독교의 초석을 놓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게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주 접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주 말씀에 노출이 되다보면 어느새 그 말씀이 내 안에 무엇인가 ‘새로운’것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백씨는 양초를 선택하고 성경은 던졌지만 그 던져진 성경책을 손에 받아든 백홍준은 한국교회사에서 영원히 기억될 ‘첫 열매’가 되었습니다. 놀랍고 신비로운 일입니다.

이헌 목사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