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컬럼


"질문해야 합니다" (길 위에 쓴 편지 9)

[질문해야 합니다]

그리고 포도를 딸 때도 다 따지 말고 땅에 떨어진 포도는 줍지 말아라. 너희는 이 모든 것을 가난한 자와 나그네를 위해 남겨 두어야 한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다.

너희는 곡식을 추수할 때 구석구석 다 베지 말며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나그네를 위해서 내버려 두어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다. <레위기 19:10, 23:22>

 

noname01.jpg

 

풍성한 한가위 명절 잘 지내셨는지요?

작년과는 다른 풍경의 명절들이었을 겁니다. 저의 가정도 이번 명절은 형제들이 모이지 않고 각자 집에서 명절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풍성한” 이라는 말과 “각 각” 이라는 말이 참 어울리지 않더라구요. 그래도 이런 노력으로 감염병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면 감내해야 할 일이겠지요.

추석은 추석인지라 각각 집에서 명절을 보낸다고 해도 평소보다는 넉넉한 먹을거리들을 장만하셨을 겁니다. 빠질 수 없는 잡채부터 시작해서 전. 고기 나물 등등 차이는 있지만 명절 분위기에 빠질 수 없는 음식들을 마주했습니다.

음식들을 뒤로 하고 길을 걷는 중에 문득 책 제목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뜬금없는 일이기도 한데,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라는 책이었습니다. 스위스 태생의 사회학자인 <장 지글러> 라는 사람이 쓴 책입니다. 그는 2000년대 유엔 인권위원회의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을 한 이력이 있는 학자입니다.

제목에 있는 대로 <왜?> 라는 말은 ‘이해 할 수 없다’ 또는 ‘정상적이지 않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즉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다, 무언가 잘못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면“무언가를 바로 잡으면 세계의 모든 인류가 굶주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결론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제목이었습니다.

<장 지글러>가 가장 마음 아파하는 부분은 사회적으로 가장 약자가 되는 어린아이들의 희생이었습니다. 즉 <어린이의 무덤>에 바치는 참회록의 성격이기도 한 책이지요. 2005년 기준으로 미국이 생산할 수 있는 곡물 잠재량만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고, 프랑스의 곡물 생산으로 유럽전체가 먹고 살 수 있는 식량생산 과잉의 시대에 수많은 <어린이 무덤>이 생겨난다는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인거죠. 물론 그 배경엔 사회적인 시스템 그리고 정치적 이해와 국가 경제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일어나는 부작용임을 저자도 잘 알고 묻는 것입니다. 즉, <왜?> 라는 질문은 몰라서 하는 질문이 아니라, 이 부작용을 우리가 어떻게 해결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하는‘성찰적 질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요즘과 같은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러한‘성찰적 질문’을 많이 해야 합니다. 타인을 향해 질타하는 질문 보다는 자신을 향한 질문이면 더 좋겠지요.

레위기서는 일종의 법조문과 같은 성서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의 자리를 규정하며 그 길을 제시하고 있는 책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린 말씀도 아주 오래전 과거에 사회적 약자들을 어떻게 돌볼 수 있는가에 대한 생활의 규칙들을 정해 놓으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더 주목해서 보아야 할 구절은 많은 경우 이러한 세밀한 규칙들 다음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다.”

즉, 앞서 세밀한 많은 규례와 법칙들, 그리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하는 모든 원리들은‘우리의 하나님은 누구이신가?’‘어떤 분이신가?’ 를 이해하고 알고 깨닫는 것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앞에 세밀한 율법이 있지만, 그 모든 율법을 통괄하시는 분 바로 <여호와 하나님>임을 아는 것이 가장 큰 원리라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신약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하나님은 결코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는 것, 2005년 기준으로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1명씩 굶어 주는 것, 비타민 A의 부족으로 시력을 상실하는 사람이 3분에 1명꼴이라는 것, 세계 인구의 7분의 1에 이르는 8억 5.000만 명이 심각한 만성 영양실조 상태에 있는 것을 원하지 않고 매우 싫어하심을 아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한 방법입니다.

얼마 전,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에서 두 어린 형제가 부모가 없는 사이 라면을 끓여 먹다가 화재가 나서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서 접하게 되었습니다.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물론 저간의 여러 가정적 사정들이 있다는 소식도 들리지만, 그리고 일면식도 없고 일생 만날 일도 없는 타인의 일에 우리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왜?>라는 질문까지 해야 하는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러한 소식 앞에 <왜, 이렇게 어린이의 무덤이 생겨나는 것인가? > 라는 질문은 또한 그리스도인의 몫이 아닐까요?

풍성한 한 가위를 보내면서 그 풍요로움을 마음껏 누리지만 또 한 면으론 우리 안에 주신 ‘모든 선지자의 강령’을 마음에서 떠나 보내지 않고 이 시대를 관통하는 <성찰적 질문>들이 우리 안에 있다면 오늘, 소박하지만 내가 누리는 이 풍요로움을 또한 세상의 절반만이 아니라 모두가 누릴 수 있게 되는 미래에 어떻게든 일조(一助)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 단순한 질문이 어떻게 그런 일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신 주님이 기뻐하시며 함께 일 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헌 목사

첨부파일